[ 금융센터에서 하이테크단지로 - 상하이 ]

지난달 열린 중국의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주룽지(주용기)중국 총리의 업무보고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정보 생물공학 신에너지 신재료 환경 등 신흥산업을 적극 발전시키고 이를 위해 산학연의 결합을 촉진하겠다"는 게 바로 그 대목.대학과 연구기관 출신들이 기업을 세우는 일,즉 벤처 창업을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중국에서 벤처열풍의 진원지는 어느 곳이 될까.

중국 안팎의 전문가들은 단연 상하이를 지목한다.

<> 완벽한 정보인프라로 벤처열풍 일으킨다 ="정말 경제권력이 재벌에서 모험(벤처)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입니까" 차이지핑(채지평) 중국과학기술부 국제합작사 아시아.아프리카 담당관은 이같이 물으며 한국내 벤처열풍에 대해 묻는다.

1970~80년대 한국의 재벌위주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관심있게 연구했던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경제권력 이동이 흥미로운 관심사라는 것.차이 담당관은 "경제권력 이동이 중국에서도 일어난다면 출발점은 상하이"라고 단언했다.

항구로서의 지리적 입지나 경제수도(수도)로서의 역사적 전통,정보통신 인프라 등을 감안할 때 상하이의 폭발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란 얘기다.

상하이시정부 장웨이지앤(장유견)부처장도 상하이시의 목표를 "무역항에서 정보항으로의 변신 "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정보항을 추구하는 상하이시의 의지는 정보통신 관련 인프라 수준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9백여만명으로 집계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 중에서 10%이상은 상하이시에 있을 정도로 중국 최고 수준의 인터넷(중국어로는 호연망)인프라를 자랑한다.

해외와 상하이를 연결하는 해저 광통신 케이블은 주위 30여개국과 1백30만회선의 통신이 가능하다.

상하이시(인구 약1천4백만)에서 7명중 1명은 이동전화에 가입해 있고 케이블TV를 보고 있는 가구도 2백80만가구에 이른다.

상하이시 최대 번화가 난징로(남경로) 뒷편에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도처에 있는 초고속통신망 광고간판과 컴퓨터상가 입간판들도 황푸(황포)강에 불고 있는 벤처 열풍을 짐작케 한다.

<> 중국의 생명공학,상하이가 맡는다 =중국과학원은 중국내 각처에 산재한 1백22개 연구기관을 20~30개의 기초연구소,20~25개의 사회공익성(응용)연구소,30~40개의 첨단신기술개발연구소로 통합.개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구조조정의 핵심에는 상하이를 생명공학과 하이테크 기술의 집합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상하이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유전자 연구와 신약개발.우선 유전자 연구에 특화하기 위해 최첨단 연구센터를 지난 1998년부터 잇따라 설립하고 있다.

상하이 소재 대학과 병원,상하이 과학기술위원회가 공동으로 설립한 "상하이인간게놈연구센터"와 푸둥(포동)신구 장장(장강)하이테크단지에 들어선 "국가인간게놈센터"가 유전자 연구의 첨병을 자임한다.

이들 연구기관들은 중국인의 유전적 다양성을 규명하고 유전자에서 질병유발인자와 기능관련인자를 구분해 내는 연구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또 벼의 유전개량을 통해 식량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게 상하이시의 설명이다.

유전인자치료제나 말라리아백신 인터페론 등 신약개발에 쏟는 관심도 상당하다.

우지앤핑 상하이생명과학원장은 "863계획이나 훠지(화거,횃불)계획 등 국가의 연구개발프로그램에서 생명공학 분야에 15%이상은 의무적으로 투자하게 돼 있다"며 "상하이에서는 이 기금들을 주로 신약과 백신개발에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하이테크항으로 =상하이시 관계자는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의 산업화 성과가 상하이시 경제성장의 44%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곳 시정부 관계자들은 말 중간중간에 "수쯔상하이(수자상해)"란 말을 곧잘 한다.

"수쯔"가 중국어로 "디지털"을 의미한다.

상하이를 디지털화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는 한편 "수쯔베이징"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중국을 먹여살려왔다는,즉 정치는 몰라도 경제의 중심은 상하이라는 자존심을 이곳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정보화,하이테크화에도 베이징에 밀릴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푸둥신구에 거는 상하이의 기대는 대단하다.

푸둥지구 황푸(황포)강변에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88층(4백20.5m) 진마오빌딩을 비롯한 수많은 마천루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빌딩들에 금융회사와 인터넷 벤처기업 등이 속속 입주하고 있다.

현재 거의 완공을 눈앞에 둔 푸둥국제공항 푸둥국제정보항 푸둥경전철 발전소 등 기간설비만 갖춰지면 4억 인구가 밀집해 있는 양쯔강 유역의 "뇌신경"이 되는 셈이다.

철저한 도시계획에 완벽한 전산망을 까는 작업이 빠질 리 없다.

"더 이상 상하이를 무역.금융의 중심지로 부르지 말라.첨단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있다. 우리는 이 기술이 역동적으로 산업화하는데 필요한 완벽한 인프라와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상하이시 장 부처장의 말이다.

하이테크항으로서의 변신을 눈앞에 둔 자신감의 표현이다.

상하이(중국)=박민하 기자 hahaha@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