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대통령 연구 '바이블' .. '그린스펀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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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그린스펀 이펙트
저자 : 제프리 크뤽센크외
출판사 : 21세기 북스
가격 : 1만3천원 ]
---------------------------------------------------------------
1987년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으로 취임했을때 다우존스주가지수는 2400선에 머물렀다.
그로부터 13년후 다우존스는 10,000선을 넘었다.
2001년에는 15,000,2002년에는 20,000선까지 치솟을 거란 전망도 있다.
앨런 그린스펀이 FRB의장으로 남아있는 한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세계 경제의 슈퍼맨"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적 영향력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능가한다.
미국 포춘지가 대기업총수 2백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그린스펀의 손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6%가 그린스펀의 재임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는 대통령의 경우 상상할수 없는 수치다.
"그린스연구의 바이블"이라 할만한 책이 번역됐다.
경영컨설턴트 제프리 크뤽센크 등이 쓴 "그린스펀 이펙트"(21세기 북스,1만3천원)는 알쏭달쏭한 그린스펀의 "말씀"을 일일이 주해한 꼼꼼한 책이다.
주요 출전은 의회 등에서 행해진 그린스펀 연설.
"어록"을 읽다보면 "황제"의 뜻을 파악하는 요령이 생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핵폭탄에 버금가는 그린스펀 쇼크는 FRB의 금리 인상을 일컫는다.
금리가 인상되면 주가는 하락하기 마련.
0.25~0.5%포인트의 등락에도 일희일비하는 것이 전세계 주식시장이다.
그린스펀 이펙트는 금리 인상을 간접 시사하는 것만으로 시장이 자동적으로 조정되는 현상을 말한다.
오늘날 주식투자는 경제대통령 그린스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는 하나의 스포츠로 변하고 말았다.
1926년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린스펀은 뉴욕 줄리어드음대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하다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는 28세에 경영컨설팅 회사를 설립,애플컴퓨터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레이건 행정부시절 중용된 그린스펀은 1987년 주가가 500포인트나 추락한 블랙먼데이를 성공적으로 수습하면서 "월스트리트의 신"으로 부상했다.
그린스펀의 정책은 한마디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이상 과열".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절제를 중시한다.
그의 경기분석은 워낙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서 "시보레 자동차 제작과정에 나사가 3개 줄면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아는 사람"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부정적인 평판도 없지 않다.
인플레에 대한 강박관념때문에 경제성장을 원천 봉쇄한다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경제학자 토마스 카펜터는 "주식수익률이 항상 20~30%를 유지할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린스펀은 이를 그때 그때 알려주는 것 뿐인데 왜 이리 호들갑인지 모르겠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FRB의 폐쇄성도 비판의 대상이다.
"사원의 비밀""FRB:국제적 미스테리"등 FRB에 관한 책 제목은 추리소설을 방불한다.
FRB이사였던 앨런 블라인더는 내부활동을 대중에 공개하려다 마찰을 빚어 2년만에 사임했다.
어쨌든 그린스펀 이후 미국 경제는 1930년이래 최저 실업률(4%)을 기록했다.
1백7개월 최장기호황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통상 실업률이 6%미만이고 경제성장률이 2.5%이상이면 인플레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린스펀경제에 인플레기미가 보이지 않자 인플레와 실업률의 관계를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이 잘못 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린스펀을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미국인들.
존 매케인 공화당 의원은 "그린스펀이 죽을 경우 일으켜 세워 검은 안경을 씌운 뒤 사람들이 모르게 하겠다"고 했다.
올해 74세인 금융황제가 인터넷이 중심되는 신경제시대에도 불사조로 남을지 그린스펀의 장래가 주목된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
저자 : 제프리 크뤽센크외
출판사 : 21세기 북스
가격 : 1만3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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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으로 취임했을때 다우존스주가지수는 2400선에 머물렀다.
그로부터 13년후 다우존스는 10,000선을 넘었다.
2001년에는 15,000,2002년에는 20,000선까지 치솟을 거란 전망도 있다.
앨런 그린스펀이 FRB의장으로 남아있는 한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세계 경제의 슈퍼맨"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적 영향력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능가한다.
미국 포춘지가 대기업총수 2백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그린스펀의 손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6%가 그린스펀의 재임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는 대통령의 경우 상상할수 없는 수치다.
"그린스연구의 바이블"이라 할만한 책이 번역됐다.
경영컨설턴트 제프리 크뤽센크 등이 쓴 "그린스펀 이펙트"(21세기 북스,1만3천원)는 알쏭달쏭한 그린스펀의 "말씀"을 일일이 주해한 꼼꼼한 책이다.
주요 출전은 의회 등에서 행해진 그린스펀 연설.
"어록"을 읽다보면 "황제"의 뜻을 파악하는 요령이 생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핵폭탄에 버금가는 그린스펀 쇼크는 FRB의 금리 인상을 일컫는다.
금리가 인상되면 주가는 하락하기 마련.
0.25~0.5%포인트의 등락에도 일희일비하는 것이 전세계 주식시장이다.
그린스펀 이펙트는 금리 인상을 간접 시사하는 것만으로 시장이 자동적으로 조정되는 현상을 말한다.
오늘날 주식투자는 경제대통령 그린스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는 하나의 스포츠로 변하고 말았다.
1926년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린스펀은 뉴욕 줄리어드음대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하다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는 28세에 경영컨설팅 회사를 설립,애플컴퓨터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레이건 행정부시절 중용된 그린스펀은 1987년 주가가 500포인트나 추락한 블랙먼데이를 성공적으로 수습하면서 "월스트리트의 신"으로 부상했다.
그린스펀의 정책은 한마디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이상 과열".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절제를 중시한다.
그의 경기분석은 워낙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서 "시보레 자동차 제작과정에 나사가 3개 줄면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아는 사람"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부정적인 평판도 없지 않다.
인플레에 대한 강박관념때문에 경제성장을 원천 봉쇄한다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경제학자 토마스 카펜터는 "주식수익률이 항상 20~30%를 유지할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린스펀은 이를 그때 그때 알려주는 것 뿐인데 왜 이리 호들갑인지 모르겠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FRB의 폐쇄성도 비판의 대상이다.
"사원의 비밀""FRB:국제적 미스테리"등 FRB에 관한 책 제목은 추리소설을 방불한다.
FRB이사였던 앨런 블라인더는 내부활동을 대중에 공개하려다 마찰을 빚어 2년만에 사임했다.
어쨌든 그린스펀 이후 미국 경제는 1930년이래 최저 실업률(4%)을 기록했다.
1백7개월 최장기호황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통상 실업률이 6%미만이고 경제성장률이 2.5%이상이면 인플레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린스펀경제에 인플레기미가 보이지 않자 인플레와 실업률의 관계를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이 잘못 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린스펀을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미국인들.
존 매케인 공화당 의원은 "그린스펀이 죽을 경우 일으켜 세워 검은 안경을 씌운 뒤 사람들이 모르게 하겠다"고 했다.
올해 74세인 금융황제가 인터넷이 중심되는 신경제시대에도 불사조로 남을지 그린스펀의 장래가 주목된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