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고(니체),예술이 죽고(헤겔),철학이 죽고(하이데거),주체가 죽고(비트겐슈타인),역사가 죽었다(후쿠야마).

이제 휴머니즘이 죽을 차례다.

독일 철학자 노르베르트 볼츠의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상황들"(윤종석 옮김,문학과 지성사)은 휴머니즘의 종말을 알리는 일종의 부고다.

저자는 미디어 혁명의 완수를 위해 인간중심주의를 일소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근세의 발명품인 휴머니즘은 신의 빈자리를 인간으로 채우려는 편법에 불과하다.

괴테만해도 휴머니즘이란 말을 몰랐다고 한다.

"인간"에 집착하는 무리는 아직도 디지털의 기초가 아날로그라고 강조하지만 인간은 이미 기계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는 "기계가 되고 싶다"는 외침이 담겨있다.

예술가는 이제 "미메시스(mimesis.자연모방)"보다 "스캔(scan.컴퓨터복사)"에 익숙하다.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테크노 미학"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디어 이론서인 "구텐베르크..."는 수메르인의 점토판부터 실리콘밸리의 컴퓨터칩까지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문자 위주의 구텐베르크적 세계가 붕괴하고 숫자 중심의 하이퍼미디어세계가 도래한다고 예측한다.

저자에 따르면 언어는 더이상 존재의 집(하이데거)가 아니다.

현대 인류는 문자가 아니라 수학적 알고리즘(컴퓨터 명령어)로 구성돼있기 때문이다.

활판인쇄술시대에 세계는 한가지 정본이 존재하는 "유니버스(universe)"였다.

유니버스의 유니(uni)는 하나란 뜻이다.

반면 컴퓨터가 지배하는 미래는 무수한 이본,즉 다큐멘트(document)가 난립하는 "다큐버스(Docuverse)"의 세상이다.

다큐버스의 우주에서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체하고 복사하고 편집하는 디자이너만 있을 뿐이다.

책은 갈 지자로 왔다 갔다하는 정신의 편린을 보여준다.

단선적인 진행이란 있을 수 없다.

일찌기 20세기 작가 제임스 조이스(1870~1942)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지 말고 하나만 한가지 방향으로 엮어나가라고 강요받았다.

이는 인쇄매체인 책의 특성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다큐버스의 21세기는 얼키고 설킨 하이퍼텍스트를 선호한다.

저자 노르베르트 볼츠는 철학에서 디자인학으로 전공을 바꾼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미래사회 철학은 지식디자인학으로 변모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선택이다.

베를린자유대에서 아도르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볼츠는 포쿠스지로부터 "트렌드 분석의 왕"이라는 극찬을,슈피겔지로부터 "언어의 거품"이라는 악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현대독불철학을 종횡하는 박학다식은 경탄할 수준이다.

백남준씨의 "전자회화"를 교란된 영상의 아름다움으로 해석한 대목도 이채롭다.

"컨트롤된 카오스""디지털미학의 고고학"등이 번역될 예정이다.

윤승아 기자 a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