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지적 사기(원제 : Fashinable Nonsense)''
저자 : 앨런 소칼/장 브리크몽
역자 : 이희재
출판사 : 민음사
가격 : 13,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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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사회의 묘한 논리 중의 하나가 프랑스 우월주의다.

인문학의 경우 지나칠 정도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맹위도 유럽의 문화패권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미국은 이른바 "철학이 없다"는 홀대를 받으면서 지적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는 물론 구대륙의 "신화적 뿌리"에서 비롯된 명암이다.

문화적 전통과 사유체계, 철학의 깊이 면에서 유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럽의 자존심을 짓밟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미국 과학자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의 엉터리 지식과 전문 과학용어
오용을 신랄하게 꼬집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 철학계가 발칵 뒤집어진 것은 물론이다.

수많은 추종세력들이 당혹스러워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들에게 겁없이 화살을 날린 주인공은
미국 뉴욕대 물리학과 교수 앨런 소칼이다.

그는 1996년 패러디 논문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를
포스트모던 저널인 "소셜 텍스트"에 기고했다.

이 논문은 수학과 과학용어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무식한 거장"들을
비꼬는 것이었다.

"소칼의 장난"으로 불리는 이 논쟁적 사건 이후 그는 벨기에의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과 함께 불어판으로 책을 펴내 프랑스 철학자들을 몰아붙였다.

곧이어 영어판도 출간했다.

바로 그 책 "지적 사기(원제:Fashionable Nonsense)"(앨런 소칼.장 브리크몽
저, 이희재 역, 민음사, 1만3천원)가 국내에 소개됐다.

이들의 화살은 예리하고 날렵하다.

과녁은 크게 두가지.

첫째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과학오용 사례를 열거하고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둘째는 포스트모던 과학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들의 과녁은 세속적 신비주의와 애매한 용어의 의도적
구사, 불명료한 사고, 과학적 개념의 무식 사례로 확대된다.

그러나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라캉이나 크리스테바, 들뢰즈 같은 지식인들이 원래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과학적 개념을 써먹거나 정확한 뜻조차 밝히지 않고 전문 과학용어를
남용하는 것을 폭로하려는 것이다.

어려운 수학공식과 과학용어를 남용하면서 모호한 방식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들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그 근거를 들이댄다.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부수효과도 한가지 더 있다.

논쟁의 양측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패러디를
창출해내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들 과학자의 눈에 비친 프랑스 철학자들은 한마디로 엉터리 박사다.

첫번째 화살은 자크 라캉에게 날아가 박혔다.

수학의 위상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려는 라캉의 시도는 하찮은 지식을
과시하고 문장을 조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정확히"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면서 "무리수"와 "허수"를 혼동해서
쓰고 잘못된 공식을 앞뒤 문장에서 거꾸로 써먹는가 하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복잡한 방정식을 정신분석학에 억지로 접목시킨다.

크리스테바도 이렇다할 설명 없이 분절집합이나 합집합, 확률분석, 힐버트의
유한론 등을 마구 인용했다고 화살을 맞았다.

이리가레이는 유체역학에 자리잡은 수학적 문제들과 물리적인 것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해 "고체는 남성으로 인식되는 반면 유체는 여성으로 인식되므로
유체역학은 고체역학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서에도 문맥과 상관없는 카오스, 극한, 카디널 이론,
리만 기하학, 양자역학 같은 고밀도의 과학용어들이 마구잡이로 쓰여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비판끝에 저자들은 "알고 말하라" "난해한 것이 심오한 것은 아니다"
"권위에 기대는 논증을 조심하라" "모호하면 언제든 발뺌할 수 있다"는
교훈을 추출해낸다.

물론 이들의 주장처럼 모든 것을 "사기"로 몰아부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사유의 거대한 전통을 과학적 엄밀성만으로 환원, 거세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과 그것에 대한 "반대검증"의 중요성은 인정받을
만하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난해한 용어를 모자이크식으로
짜깁기하는 국내 일부 현학주의자들에게 더욱 아픈 화살이 될 것이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