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온 유득공(1748~1807).
그의 대표적인 저서 "발해고"(홍익출판사, 1만원)가 20년동안 발해사를
전공해온 서울대 송기호 교수의 손길을 거쳐 완역, 출간됐다.
송 교수는 기존의 번역서와는 달리 가장 오류가 적은 판본으로 알려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권본 "발해고"를 저본으로 삼았다.
해제에다 원문을 번역한 수준을 넘어 자세한 해설까지 곁들여 일반인들도
발해사의 전체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 발해인의 모습을 담은 "삼채여용"(1998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발굴)을
비롯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발해 유적 관련사진도 함께 실었다.
한문 원본과 영인본이 들어 있어 대조도 가능해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무엇보다 "발해고"가 오늘날 한국사학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서문에 잘 나타나 있는 유득공의 혁신적인 역사관 때문이다.
그는 "발해를 세운 대씨가 고구려인이고 그 영토 역시 고구려 땅이었다"면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고려가 발해를 포함한
"남북국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같은 그의 역사관은 한국사학사에서 "통일신라론"을 거부하고 신라와
발해가 각각 대동강 일대를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시기를 "남북국"
으로 인식하게 하는 효시를 이뤘다.
유득공은 발해와 신라를 아울러 "남북국"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을 2백년
전에 제시한 인물이다.
서얼출신인 그는 이덕무 박제가 등과 함께 북학파의 일원으로 꼽힌다.
정조에게 박탁돼 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다.
조선후기 한문학사의 4대가 중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포천현감을 지내던 37세때 규장각에서 왕실도서를 읽은 것을 바탕으로
발해역사를 군 신 지리 직관 의장 물산 국어 국서 속국의 9고로 편찬한
"발해고"를 저술했다.
< 강동균 기자 kd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