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때인 지난 80년대초.

당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수휴 재무부 이재국장과 이형구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의 자리를 서로 맞바꾸도록 했다.

사사건건 대립하던 두 부처의 핵심요직을 맞 트레이드해 입장을 바꿔놓고
일해보라는 취지였다.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공무원사회의 이른바 "나와바리(영역)" 싸움을
깨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주목을 끌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화합차원의 인사교류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두 부처에선 인사교류가 이뤄지면 서로 "내것, 네것" 다툼이 상당폭 해소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재경부에서 일하다가 금감위로 갈 수 있고 거꾸로 금감위에서 재경부로
돌아갈 길도 열리는 셈이다.

그러면 굳이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서 자기영역을 지키느라 부심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이나 이용근 금감위원장간에 어느정도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은 최근 업무분장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를 체결했다.

지난해말 금감위 직제확대로 우려되는 금감원과의 마찰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새로 바뀐 정부조직법 시행령엔 금감위와 금감원의 할일이
서로 중첩돼 있어 마찰소지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인사교류나 MOU체결은 역설적으로 이들 기관이 정책소비자인 금융
회사나 국민들 위에 군림해 있다는 증좌로 풀이된다.

영역다툼을 벌이는 것 자체가 금융정책이나 인허가업무를 여전히 "특권"으로
여기는 탓이다.

법에 정해진 대로 일하고 국민들에게 서비스할 의지가 있다면 조직 이해관계
가 불거질 수 없다.

한 지붕을 쓰는 금감위와 금감원이 굳이 MOU까지 맺어야 하는 속사정도
알고 보면 볼썽사납다.

디지털 경제시대엔 덩치 큰 기업보다 "빠른 기업"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의 취임일성도 디지털경제에 걸맞은 패러다임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은 아직도 아날로그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은 우수한 최고경영자(CEO)를 데려온다고 강화되는 게
아니다.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정부부터 덩치(권한 영역)를 키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빠른 정부"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의 금융시장이 낙후됐다는 외국인들의 얘기속엔 정부의 낮은 경쟁력을
꼬집는 소리도 담겨 있다.

<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