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렵게 꾼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망상"이라는 비아냥을 받지만 뭔가
새로운 일이 성사되는 시작은 언제나 허무맹랑한 "꿈"이었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시작됐던 99년 주식시장이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주가 1000시대"가 열린 것도 몇몇 사람의 꿈에서 시작됐다.

IMF위기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연초만 해도 "주가 1000시대"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성층권의 세계였다.

가장 높게 전망한 사람도 800선에 머물렀으며 그것조차도 전망이라기 보다는
"희망사항"으로 여겨졌다.

98년10월부터 시작된 주가상승세가 연초까지 이어져 1월11일 640까지 올랐던
종합주가지수가 하락세로 반전, 2월24일 498.42까지 밀리자 비관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주가가 고개를 숙여 비관론이 퍼질 때도 주가상승을 확신하고 "주가 1000
시대"를 준비해온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김헌수 메릴린치증권
조사담당이사, 외국인 투자자와 수많은 펀드매니저, 그리고 투자상담사와
무명용사(개인투자자)들.

정부 쪽에선 김대중 대통령,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위원장등.

이들이 "절대회의론"에도 꺾이지 않고 올해 주식시장을 이끌며 "주가 1000
시대"를 피워낸 선각자이다.

한경스타워즈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이재현 대한투신 펀드매니저와
한화증권의 수익률게임에서 연거푸 1위를 차지하며 개미군단의 "우상"이 된
대학생 박정윤씨도 99년증시가 나은 스타이다.

99년 주식시장을 얘기하면서 이익치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 3월2일 "바이코리아펀드"를 출범시키면서 "주식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주식시장을 활성화시킬 수밖에 없다"며
바이코리아펀드를 3년안에 1백조원 규모로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식형수익증권 전체잔액이 9조원을 밑돌던 당시로서는 꿈같은 얘기였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돈키호테라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한국경제를 살리자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가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
에 스며들면서 바이코리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판매한지 12일만에 1조원을 돌파하자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이코리아가 주식을 매수하면서 주가는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현대전자 주가조작혐의"로 한때 옥살이를 한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가 구속됐을 때 투자자들은 "이회장을 석방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검찰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회장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 있으나 "이익치 신드롬"은
그렇게 99년 증시를 강타했다.

이 회장과 함께 주식바람을 일으킨 사람으로는 "뮤추얼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을 꼽을 수있다.

그는 98년12월 "뮤추얼펀드"라는 것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두달전부터 오름세로 돌아섰다고는 해도 아직 긴가민가하던 때였다.

특히 뮤추얼펀드는 1년동안 맡긴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김영일(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2본부장)이라는 또한사람의
스타를 만들어내면서 화려하게 성공했다.

뮤추얼펀드 열풍이 불면서 주식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99년7월부터 뮤추얼펀드가 봇물처럼 등장한 것은 박사장의 노력 때문이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헌수 메릴린치증권 이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올해 주가흐름의
줄기를 잡은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주식을 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이사는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 주식을 살 때라고 강조해 왔다.

99년5월, 종합주가지수가 700선을 돌파하면서 "증시과열.과속.버블론"이
제기됐을 때도 "그렇지 않다"고 명백하게 밝혀왔다.

한국 기업들이 인원감축과 부채축소 및 과잉설비감축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과 디레버리지(De-Leverage)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익치 회장과 박현주 사장 등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이라면 이재현
펀드매니저와 박정윤씨등은 그 무대위에서 화려한 춤을 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들이다.

두사람은 모두 한경스타워즈와 한화증권의 수익률게임에서 2천%가 넘는
수익률을 올려 개인투자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스타워즈에서의 매매동향이 한국경제신문에 날마다 게재된 이재현씨의
경우엔 개인투자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씨는 한화증권에 특채돼 주식딜러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은 99년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한 양대기둥이었다.

3월부터 6월까지는 기관과 외국인에 의한 "쌍끌이장세"가 펼쳐졌다.

대우문제가 불거져 나온 7월중순 이후에는 외국인들이 매도세로 돌아섰으나
투자신탁(운용)의 펀드매니저들이 "외끌이장세"로 주가하락을 막아냈다.

10월말부터는 외국인의 공격적인 매수세가 기관의 매물을 받아내며 "주가
1000시대"를 다시 여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름이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수많은 투자상담사의 활약도 적지 않았다.

투자상담사들은 99년부터 허용된 장중거래(Day Trading)를 마음껏
활용하면서 주식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데이트레이더들은 하루에 수십차례씩 사고 팔아 거래량을 늘리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반면 주가를 필요이상으로 오르 내리게 하는 부정적 영향도
미치고 있다.

99년 주식시장을 이끈 사람들로 수많은 무명용사들을 빼놓을 수 없다.

가정주부, 샐러리맨, 검사, 목용탕 때밀이, 단란주점 종업원, 구두닦이등...

그들은 어렵게 모은 돈을 주식시장에 밀어넣음으로써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주가양극화"로 인해 투자원금이 반토막이 나는 상황에서도 주식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은 99년 11월부터 코스닥시장과 공모주시장으로 옮겨감으로써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고자 했다.

기관과 외국인에 일방적으로 당하던 과거의 양상에서 벗어나 기관과
외국인을 상대로 버거운 수익률 게임을 벌이는 당당한 주체로 부상했다.

앞에서 거론한 사람들이 주식시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면 김대통령과
이위원장은 측면지원자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취임이후 금융.기업구조조정이라는 원칙을 흐트러짐없이
일관되게 추진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으로 이어지는 주변4강국 외교를 성공적으로
일궈냄으로써 경제가 국제정치,특히 남북한 긴장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위원장은 김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무리없이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 홍찬선 기자 hc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