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꽃잎처럼 포개져
처음 접하던 날
그대 고향 제주 바다와
내 고향 한강물이 뒤섞이던 소리
남해 신선한 푸른 물결이
병들고 썩은 한강물을 싸워 넘어뜨리며
흘리게 한 피

양정자(1944~) 시집 "아내 일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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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을 가장 뜻깊고 즐거웠던 날로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개 시의 소재로 삼지 않는 것은 무언가 쑥스럽다는 느낌
때문일 터이다.

한데 이 시인은 과감히 그것을 소재로 꺼내어 생명과 사랑과 쾌락의 기쁨을
재생시키고 있다.

자칫 외설스러울 수 있는 뒤섞인다든지 싸워 넘어뜨린다 등의 비유도
아름답기만 하다.

성이 주제가 될 때 시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