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탁환(31)씨가 장편 "허균, 최후의 19일"(전2권,
푸른숲)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던 허균(1569~1618)의 일생을 통해 지식인의
고뇌를 심도있게 그린 역사소설이다.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형극의 길을 걸은 한 사내의 죽음이
뉴밀레니엄 시대의 우리 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난해 장편 "불멸"에서 인간 이순신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명암을 비춘
작가가 "실패한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유토피아를 향한 꿈과 현실의 장벽 사이에서 좌절당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 투지의 상징이 허균에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캐릭터에는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개척하려는 갈망이 짙게 배어 있다.

허균은 "불멸"에도 잠깐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 때 20대 청년이었던 허균은 현체제에서 변혁을 모색하려는 이순신을
비판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생 황금기의 40대로 나온다.

그는 전란과 궁핍의 시대에 드라마같은 생애를 살다 갔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진 문필가이자 서자차별
과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해 반란을 계획하다 발각돼 처형당한 비운의 사내.

어릴 때는 누이 허난설헌과 함께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20대에는 임진왜란
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방랑과 기행으로 세월을 보내던 그는 40대 중반부터 이이첨과 함께
북인 정권의 핵심이 돼 권력 중심부로 진출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늘 꿈꾸어 오던 이상국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역사의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간다.

그는 "왜 편한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느냐"는 물음에 "배고픔과도
같은 희망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허기진 현실은 갈증을 낳는다.

갈증은 희망과 절망의 두 갈래 길을 낳는다.

이 작품의 큰 줄기는 허균과 광해군의 갈등이다.

두사람은 스무살 안팎에서 임진왜란의 참상을 보았고 30대에는 몸을
웅크리고 때를 기다렸다가 40대에 비로소 뜻을 펼쳤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무척이나 아꼈지만 역모와 참살로 운명을 달리했다.

혼탁한 시대에 지식인의 선택과 번민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관계다.

문학속에 등장하는 "실패한 혁명가"는 많다.

임꺽정 장길산 등은 체제변혁의 구체적 계획을 갖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민중적 불만에 지식인의 대안모색을 겹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가는 "단 한번 몸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균의 욕망에서 80년대의
열정을 돌아보고 그가 의금옥에 갇히는 순간부터 90년대 현실의 반성을 비춰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거리를 꼼꼼한 자료조사와 세부묘사로 메웠다.

변비에 걸린 광해군의 배변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열권이나
독파했다고 한다.

"호민론" 등 허균의 작품과 관련 사료를 일일이 대조하고 학술이론도
검증했다.

별책부록으로 "홍길동전" 원본까지 곁들였다.

그가 "가장 성실한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