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들의 신중치 못한 발언들이 원화가치 움직임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딜러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의 원화절상은 외국인 자금이 급격하게
유입된데 따른 것이지만 정부당국자들의 원화가치 관련 발언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국자들의 발언은 원화가치가 팽팽한 분기점에 서 있을 때 터져 나와
원화가치를 이상 급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게 딜러들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환투기세력들은 정부당국자들의 어설픈 발언을 기회삼아 대량
으로 달러화를 매도, 거액의 차익을 챙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국자들은 8일과 9일에도 환율관련 발언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딜러들은 정부당국자들이 사전조율도 거치지 않은 채 "누구나 마음대로"
발언하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경우 환율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부처(일본은 대장성)와
중앙은행 등만이 환율에 관해 코멘트한다.

이것은 정부내의 규율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같은 룰이 없다.

지난달 29일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의에
참석하러 필리핀에 갔다가 "일본 엔화가 계속 강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원화가 수출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외신에 보도됐다.

이후 원화가치가 급등세를 탔음은 물론이다.

외환실무자들은 원화절상을 막기위해 대규모로 달러화를 사들여야 했다.

그러나 이틀뒤 조환익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비슷한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로인해 정부가 원화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시장소문은 기정사실화됐다.

게다가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은 아시안월스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원화절상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환율정책과 관련,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클 수 밖에 없는 재경부
장관이 속마음으로 비춰질 수 있는 말을 했으니 시장이 반응하지 않을리
없다.

1천1백50원선 돌파를 놓고 공방을 벌이던 원화가치는 이로인해 강한 탄력을
받았다.

장중 한때 20원 가까이 오르는 일도 생겼다.

이같이 원화가치가 급등하고 수출업체들이 아우성을 지르자 정덕구 산자부
장관, 강봉균 장관,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8일과 9일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강력한 대책을 세우겠다는게 요지다.

그러나 시장은 이들의 발언을 더 이상 무게있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정책을 믿고 샀다가 손해를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며 "정부가 시장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내은행의 한 딜러는 "한국에는 웬 외환당국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달러화를 손절매한 한 딜러는 "정부당국자들을 외국으로 보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공부라도 좀 시켜야 하는게 아닌가"라며 흥분했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정부 당국자들의 외환관련 발언 ]

<> 한덕수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11월29일)

"일본 엔화가 계속 강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원화가 수출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승할 여지가 있다"(아세안 회의 참석중에)

<> 조환익 산자부 무역투자실장(12월1일)

"최근 원화강세가 진행중이지만 일본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
경쟁력에 문제 없다"(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12월3일)

"원화가치 절상될지도 모른다"(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 정덕구 산자부장관(12월8일)

"정부는 환율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
(무역업계 대표들과 만나)

<> 강봉균 장관(12월9일)

"최근 원화의 절상속도와 수준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인간개발연구원
초청 강연회에서)

<>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12월9일)

"환율이 문제이며 외화가 너무 많이 들어와 인플레를 자극할 수도 있다"
(정례 브리핑에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