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레디, 액션!"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유영식 감독의 옹골진 목소리가 중국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
(상해전영전시공사) 산하 처둔 세트장에 두텁게 깔린 어둠을 갈랐다.

정적속의 좁은 길을 가로질러 담뱃불을 붙이는 한 남자의 등 뒤에서 터진
폭발음.

불기둥에 휩싸인 상해일본거류민단-홍구보위대 건물, 우왕좌왕하는 일본군과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거리는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OK!" 단 20초짜리 필름을 건지기 위해 소비한 시간은 무려 3시간.

어느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다.

씨네월드(대표 이준익)가 내년 5월 개봉을 목표로 중국 현지에서 제작중인
첫 한.중 합작영화 "아나키스트"의 촬영이 순조롭다.

지난달 22일 크랭크인한 뒤 지금까지 20%의 촬영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아나키스트는 20년대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독립투쟁했던 조선인 청년
테러리스트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우리 역사상 유례없는 극렬 테러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기억속에 묻혀버린
의열단의 활약상을 소재삼았다.

막내 상구(김인권)가 떠올리는 4명의 단원 세르게이(장동건), 이근(정준호),
한명곤(김상중), 돌석(이범수)의 격정적 삶을 액션과 로맨스를 곁들여
엮는다.

유영식 감독은 "역사속에 숨겨진 사나이들의 이야기다"며 "관객들이 그런
삶과 사건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물론 20년대 상하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처둔세트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둔세트장은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 첸 카이거의 설계에 따라
남경대로 등 당시 상하이 거리의 모습을 실물크기로 복원해 놓고 있다.

첸 카이거는 이곳에서 "풍월"을 찍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태양의 제국" "상하이 1920" 등을 이곳에서 만들었다.

세트장의 총규모는 60만평.

현재 50% 정도의 세트장 건설이 완료됐다.

중국정부는 상하이를 21세기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만든다는 구상아래
10억위앤 이상을 이곳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익 대표는 "우리의 현재여건으로는 할리우드에 직접 갈 수 없다"며
"중국은 우리가 돈 드라마 배우를 공유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역할을
할 거점으로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 상하이=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