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생명은 얼마전 세일즈매니저를 뽑았다.

세일즈매니저는 보험영업의 최일선에서 수십명의 보험설계사를 직접 관리.
교육하는 중요한 자리.

이 회사는 그만큼 우수 인력을 뽑으려고 노심초사했다.

이 회사는 그러나 지원서를 받자마자 색다른 고민에 빠져야 했다.

채용인원이 10명 남짓이었는데 무려 4백명 넘게 지원했을 뿐 아니라 지원자
의 면면이 대부분 고학력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고심끝에 이 회사는 13명을 최종적으로 채용했다.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교수와 미국 경영학 석사(MBA) 출신자, 삼성 LG그룹
전직 과장 등이 포함됐다.

보험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보험업계가 최근 "삼양동 정육점"이란 영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화에 보험설계사가 성관계를 미끼로 보험계약을 유치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

중요 장면은 아니지만 보험회사와 보험설계사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험인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영화 제작사를 방문해 보험업계의
분노를 전달했다.

한때는 법적 대응도 검토했지만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돼 백지화했다.

이에 대해 제작사측은 "영화의 줄기가 보험설계사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또 늘 그렇듯이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보험업계는 현재로선 이 영화가 큰 파문없이 조용히 상영되길 바랄뿐 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한국경제신문에 이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한 보험설계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주부 보험설계사로서 지금껏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왔는데 남편이
이 영화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또 "주부가 대다수인 33만여 보험설계사 개개인의 인권보다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가 과연 더 중요한 것이냐"며 항변했다.

보험설계사를 보는 사회의 시각이 많이 변했다.

여성들만의 일회성 부업이 아니라 성공하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보장받는
전문직종으로 자리잡았다.

많은 여성 보험설계사 역시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성공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한편의 영화때문에 자신들의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표현의 자유"가 모든 가치보다 언제나 우선돼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 김수언 경제부 기자 soo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