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업공사 이사에 정치인이 내정됐다.

수십년간 야당생활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는 정당인이다.

지난 95~98년엔 서울시의회 의원을 지냈던 정복진씨다.

좀 더 자세한 경력을 살펴보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을 나왔다.

평화민주당 창당발기인, 평화민주당 농수산국 부국장,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창설.자문위원, 신민주당 농수상공국장, 아태평화재단 중앙위원, 통일민주당
조직국 부국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경력은 김대중 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 총재시절 수행비서를
한 것이다.

나는 정씨를 만나본 적도 없고 평가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의 인격, 자질, 취미, 특기 무엇하나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금융기관 근무경험이 전혀 없고 금융에 관한
연구도 해보지 않은 비금융인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신임 이사를 공개모집 했다면 그는 기본적인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해
원서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이번 인사가 "낙하산"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정씨가 신임 이사에 내정됐다는 사실을 정재룡 성업공사 사장에게서 확인
하고는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권력을 창출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에겐 당연히 보상이 따를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야 주변에 인재를 모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보상은 국민에게 폐를 끼치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

성업공사 이사는 최고의 실력과 경쟁력을 지닌 사람이 선임돼야 하는
자리다.

성업공사가 맡고 있는 임무가 너무도 막중하기 때문이다.

성업공사는 국민세금 22조7천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그 돈으로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55조9천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떠안아
줬다.

최근 문제가 된 대우사태도 성업공사가 대우 무보증채권 15조원어치를
사주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이제 성업공사는 금융기관에서 매입한 부실채권을 팔아 국민세금을 회수해야
하는 단계다.

부실채권을 얼마나 잘 가공.처리하느냐,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얼마나 비싸게
파느냐에 따라 국민세금 22조원의 행방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성업공사 경영진은 금융의 기본에서부터 첨단 금융기법에 이르기
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철저히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인사는 망사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인사 때문에 모든 일을 망치게 된다는 말이다.

국민의 정부는 "금융기관 부실책임자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항상 강조해
왔다.

이번 인사가 망사로 판명날 경우 이런 원칙이 계속 지켜질 지 궁금하다.

< 김인식 경제부 기자 sskis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