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의 큰별이 스러졌다.

한국영화 전성기였던 60년대 최고의 스타로 은막을 누볐던 최무룡씨가 11일
오후 10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1928년 경기도 문산에서 태어난 최씨는 대학시절(중앙대 법대)부터
연극무대를 통해 연기와 인연을 맺었다.

52년 채만식의 소설을 영화화한 "탁류"에 출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55년 김동인 원작,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에서 최은희와 출연해 호평
받은 후 주연배우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후 "꿈은 사라지고" "오발탄" "5인의 해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남과북" "자유부인" 등 5백여편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특히 60년대에는 신영균, 남궁원과 함께 남자배우 3인방중 하나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최씨는 65년 "피어린 구월산"으로 감독으로 나서 "나운규의 일생" "서울은
만원이다" "제3지대" 등 15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최씨는 이렇듯 모두가 헐벗었던 시절의 대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했고
한국영화발전의 기초를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한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최씨의 공을 기려 12일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최씨의 사생활은 은막에서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영화제작에도 실패해 74년부터 5년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최씨는 88년 13대 총선때 파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화제를 뿌렸다.

장례는 영화인장(위원장 김지미)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차금자씨와 전처 강효실씨와의 사이에 난 배우 최민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1호실.

발인은 13일 오전 8시.

장지 벽제 장묘장.

(02)362-0899.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