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알아이의 유완영(36) 회장은 북한통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95년부터 북한을 10여 차례 드나든 그는 마침내 지난해말 평양 대동강
인근에 모니터용 PCB 조립 공장을 준공했다.

물류애로 등 그가 얘기하는 남북경협 문제는 "바이블"로 통할 정도다.

체험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양공장에서 조립한 PCB는 경북 상주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과 품질에
손색이 없다. 오히려 원가절감에 도움을 준다"(유 회장).

자선사업이 아닌 윈윈(win-win)형 남북경제 모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책상물림이 아닌 실전에 강한 북한경제 전문가인 것이다.

그러나 그를 북한통으로만 부르는 것은 한쪽면만 본 것이다.

벤처업계는 작년초 부도난 모니터 공장을 인수, 성공벤처로 키워낸 기업가로
그를 평가한다.

그는 후발주자인 탓에 패션과 편리성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다.

작년 8월 17인치 모델을 내놓았다.

이 모델로 최근까지 2백여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년여만에 17인치급 내수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최근엔 대웅상사와 최소 월3천대 보장조건으로 유통계약까지 체결했다.

케이스 크기를 줄여 날렵해진 외관, 마우스 등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USB
(Universal Serial Bus)포트를 모니터 양면에 설치, 조그셔틀 하나로 화면
밝기 등 다양한 기능을 조정하는 것 등이 주목을 끈 강점.

그가 벤처기업에 뛰어든 사연은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대 전산공학과를 졸업, 연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산업경영정보연구원을 설립했다.

구소련기술을 국내에 연계하는 기술복덕방 사업이었다.

짭짤했다.

그러나 직접 무역을 하기 위해 북방통상을 89년 창업, 보드카를 수입판매
했다.

그러나 91년 부도로 쓰러진 뒤 재기를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관광가이드 등을 하면서 모스크바대학에서 한반도 정치역학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러나 체첸사태로 러시아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93년 미국 땅을 밟는다.

선후배가 있는 제약회사 등에서 일다가 94년 국제경영연구원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북한교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95년 8월 미국에서 북한투자 첫 세미나를 여는 등 남북경협 컨설팅회사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96년 한국으로 귀국, 이 사업을 계속했다.

국제경영연구원의 영어약자를 따서 아이엠알아이(IMRI)로 상호를 정했다.

유 회장은 연말부터는 평양공장에서 모니터 완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사업영역도 모니터에 머물지 않는다.

첨단영상 제조업체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완전 평면모니터를 개발중으로 오는 11월 미국 라스베가스 컴덱스쇼에
출품한다.

"북한전문가 그리고 성공한 벤처기업인"

유 회장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달라져야 할 것 같다.

(02)3445-0111

< 오광진 기자 kjo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