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실시된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국민각성당(PKB)의 압둘라흐만 와히드
당수가 당선됨에 따라 향후 인도네시아 정국은 혼미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메가와티 지지자들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메가와티가 당선되지
않을 경우 "제2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실제로 이날 대선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수만명의 메가와티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여 군경 치안병력과 충돌사태를 빚었다.

이에따라 대규모 반 정부 시위와 폭동이 계속될 경우 인도네시아는 다시
혼란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와히드 신임대통령의 정치 일정도 평탄치 않을 전망이다.

그가 당선된 것은 본인의 인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메가와티의 당선을
막으려는 골카르당과 군부가 그를 밀어줬기 때문이다.

와히드 대통령은 자칫 골카르당과 군부에 의해 조종되는 "꼭둑각시 대통령"
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와히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발표되자 국민협의회(MPR) 건물 안팎
을 비롯한 수도 자카르타 시내 곳곳에는 와히드 지지자들이 몰려나와
"대통령 와히드"를 연호하며 국가를 합창했다.

며칠째 "메가와티 아니면 혁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온
메가와티 지지자들은 패배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개표가 진행된 국민협의회 의사당 본회의장에는 한표 한표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흥분과 환호가 교차.

개표 초반 메가와티가 10표를 얻을 때까지 와히드는 1표밖에 득표하지
못했으나 2백표에 이르러서는 메가와티 1백10표, 와히드 90표로 메가와티가
박빙의 리드.

그러나 5백50표를 넘어 와히드가 역전했고 그대로 과반을 넘겨 당선이
확정됐다.


<>.와히드 신임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수시간만에 BJ하비비 전 대통령과
메가와티 여사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와히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화의 시련을 거치면서 깊은 이해심을
발휘해준 메가와티에게 감사를 표시한다"면서 "혈연 언어 문화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의 평등권과 표현의 자유 및 법치를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메가와티 후보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향해 행진하려다 저지하는 군경 치안병력과 충돌했다.

시위대와 군경이 충돌한 의사당 근처에서 한 승용차가 폭발, 최소 1명이
숨지고 군인 2명을 포함해 적어도 18명이 다쳤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군과 시위진압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고 경고 사격을 가했다.

시위대는 군인과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도로 요금소 등을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 골카르당은 내분과 군부와의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대선후보를 내지 못했다.

하비비 전 대통령은 국민협의회가 국정보고와 관련,자신을 불신임하자
선거를 불과 몇시간 앞두고 전격 후보를 사퇴했다.

골카르당은 아크바르 탄중 당수를 대통령 후보,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총사령관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으나 당 간부회의에서 거부되는 바람에
선거 직전 후보지명을 끝내 철회했다.


<>.이날 오전 메가와티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큰 폭으로 올랐던
주가와 루피아화는 와히드 후보의 당선발표 이후 일제히 급락했다.

외환시장에서 루피아화는 장중한때 전날보다 10%나 치솟았으나 대선결과가
나오자 달러당 7천3백루피아로 주저앉았다.

자카르타 종합주가지수도 644를 넘었다가 전날 수준인 584대로 떨어졌다.

< 김선태 기자 orc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