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 하루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 노천명(1912~57) 시집 ''산호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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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40~50년전 가을 무렵 우리 시골 정경이다.

앞 3행은 새벽, 뒤 4행은 저녁.

햇밤이나 대추를 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어야 추석 제물을 마련한다.

절편 같은 반달이 산에 걸린 저녁, 성황당 고개를 넘어오는 나귀 방울 소리,
컹컹 짖는 삽살개 소리가 귀에 들린다.

졸음을 쫓아가며 장에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막내딸 이쁜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 신경림 시인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