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구속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들..'노을...'/'천둥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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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을 넘긴 중진작가의 귀거래사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의 세상읽기.
서울을 떠나 고향인 장흥 율산 바닷가에 칩거중인 작가 한승원(60)씨가
세번째 시집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지난 87년 장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뒤 절필했던 시인 이산하(40)
씨는 첫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문학동네)를 내놓았다.
한 사람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한 사람은 세속도시로 돌아왔다.
삶의 명암을 비추는 방식이나 세계와 교감하는 자세는 다르지만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행보는 닮았다.
한씨의 시집은 자연으로 돌아가 자유를 누리게 된 시인의 의식세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바다에/왜 왔니/하고/파도가 물었다/(중략)/어느날 문득/풍덩 빠져서/
한송이 연꽃으로/솟아오르려고"("이 바다에 왜 왔니" 부분)
그 바닷가에서 시인이 날마다 하는 일은 문명의 찌꺼기인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다.
그는 "내 공화국의/모래밭 갯벌밭에 떠밀려 들어와 있는/스티로폼 부표
그물 자락 목나무 댓가지"를 줍고 "맥주병들 사이다캔 비닐봉지 휴지들"을
치우면서 스스로를 비워낸다.
이는 곧 경계의 안팎과 생사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공간확대로 이어진다.
자신의 자유를 유보함으로써 또다른 세상을 만나려는 준비작업이기도 하다.
"구태여 이념과 자존심을 앞세운 채/외뿔 짐승처럼 코발로만 나아가려 고집
하지 않는다/뒤로도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무시로 진출하는 걸림 없는
자유인/(중략)/나 슬프고 억울할 것 없다"("송장게" 부분)
그는 자연과 문명, 자유와 구속이라는 대조적이고 보완적인 개념을 세상과
한발짝 떨어진 율산 앞바다에서 펼치고 있다.
그것은 삶의 높낮이를 두루 조망한 뒤에 발견한 화합과 상생의 세계이기도
하다.
사십대 후반에 몹시 아팠을 때 "예순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는
그는 "그 나이를 바야흐로 넘어섰으니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라고 여기는
자유자재, 그것이 이 시집을 만들게 했다"고 밝혔다.
이산하씨의 시집은 시대의 부침에 따라 개인의 삶이 얼마나 깊은 질곡을
거듭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98년 봄에서 99년 봄까지의 작품(1부)과 77년 봄에서 85년까지
의 시(2부)가 나뉘어져 있다.
시인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뒷부분부터 거꾸로 읽는 게 더 좋다.
2부에는 70년대와 80년대를 온 몸으로 관통해온 시인의 감정이 절절히 담겨
있다.
"아무런 모순 없이 난, 저 빛나는 하늘의 별일 수가 없다"("구토.2" 부분)
시인은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디론가
숨으려고 한다.
그에게 세상은 비어있는 껍질이었다.
시인.문학평론가 최동호씨는 그의 초기작을 "구멍의 시학"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10여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시인의 마음은 여유롭다.
"비명마저 삼켜버리는 척살 같은 세월"을 살아온 그가 "자연의 이치에
따를 때 몸은 구속돼 있지만 오히려 마음은 넓어지고 자유로와진다"는 걸
체득한 것이다.
"햇빛 한 점에/살 한 점 떼어주고/바람 한 점에/밥알 한 점/떼어주고 나면//
방안에는/소떼/발자국들로/가득 찬다//0.7평의 감방/날마다/나의 토지는/
한없이 넓어간다"("토지" 전문)
그러나 진정한 자아와 현실 사이에는 아직도 징검다리가 없다.
이것이 시인을 새로운 강박감으로 몰아간다.
"어느 날부터/갑자기/악몽이 사라졌다//난,/이미,/죽었는지도 모른다"
("악몽" 전문) 악몽은 살아있음의 역설적인 의미다.
현실의 억압에 대한 자각이 자기 존재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아물지 않는 생의 상처를 자주 어루만진다.
"어느 생이든/내 마음은/늘 먼저 베인다//베인 자리/아물면,/내가 다시
벤다"는 치열함이 그의 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삶의 뿌리로부터 "상처의 꽃"을 밀어올리는 힘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고사목"의 이미지에 함축돼 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
서울을 떠나 고향인 장흥 율산 바닷가에 칩거중인 작가 한승원(60)씨가
세번째 시집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지난 87년 장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뒤 절필했던 시인 이산하(40)
씨는 첫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문학동네)를 내놓았다.
한 사람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한 사람은 세속도시로 돌아왔다.
삶의 명암을 비추는 방식이나 세계와 교감하는 자세는 다르지만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행보는 닮았다.
한씨의 시집은 자연으로 돌아가 자유를 누리게 된 시인의 의식세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바다에/왜 왔니/하고/파도가 물었다/(중략)/어느날 문득/풍덩 빠져서/
한송이 연꽃으로/솟아오르려고"("이 바다에 왜 왔니" 부분)
그 바닷가에서 시인이 날마다 하는 일은 문명의 찌꺼기인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다.
그는 "내 공화국의/모래밭 갯벌밭에 떠밀려 들어와 있는/스티로폼 부표
그물 자락 목나무 댓가지"를 줍고 "맥주병들 사이다캔 비닐봉지 휴지들"을
치우면서 스스로를 비워낸다.
이는 곧 경계의 안팎과 생사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공간확대로 이어진다.
자신의 자유를 유보함으로써 또다른 세상을 만나려는 준비작업이기도 하다.
"구태여 이념과 자존심을 앞세운 채/외뿔 짐승처럼 코발로만 나아가려 고집
하지 않는다/뒤로도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무시로 진출하는 걸림 없는
자유인/(중략)/나 슬프고 억울할 것 없다"("송장게" 부분)
그는 자연과 문명, 자유와 구속이라는 대조적이고 보완적인 개념을 세상과
한발짝 떨어진 율산 앞바다에서 펼치고 있다.
그것은 삶의 높낮이를 두루 조망한 뒤에 발견한 화합과 상생의 세계이기도
하다.
사십대 후반에 몹시 아팠을 때 "예순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는
그는 "그 나이를 바야흐로 넘어섰으니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라고 여기는
자유자재, 그것이 이 시집을 만들게 했다"고 밝혔다.
이산하씨의 시집은 시대의 부침에 따라 개인의 삶이 얼마나 깊은 질곡을
거듭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98년 봄에서 99년 봄까지의 작품(1부)과 77년 봄에서 85년까지
의 시(2부)가 나뉘어져 있다.
시인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뒷부분부터 거꾸로 읽는 게 더 좋다.
2부에는 70년대와 80년대를 온 몸으로 관통해온 시인의 감정이 절절히 담겨
있다.
"아무런 모순 없이 난, 저 빛나는 하늘의 별일 수가 없다"("구토.2" 부분)
시인은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디론가
숨으려고 한다.
그에게 세상은 비어있는 껍질이었다.
시인.문학평론가 최동호씨는 그의 초기작을 "구멍의 시학"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10여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시인의 마음은 여유롭다.
"비명마저 삼켜버리는 척살 같은 세월"을 살아온 그가 "자연의 이치에
따를 때 몸은 구속돼 있지만 오히려 마음은 넓어지고 자유로와진다"는 걸
체득한 것이다.
"햇빛 한 점에/살 한 점 떼어주고/바람 한 점에/밥알 한 점/떼어주고 나면//
방안에는/소떼/발자국들로/가득 찬다//0.7평의 감방/날마다/나의 토지는/
한없이 넓어간다"("토지" 전문)
그러나 진정한 자아와 현실 사이에는 아직도 징검다리가 없다.
이것이 시인을 새로운 강박감으로 몰아간다.
"어느 날부터/갑자기/악몽이 사라졌다//난,/이미,/죽었는지도 모른다"
("악몽" 전문) 악몽은 살아있음의 역설적인 의미다.
현실의 억압에 대한 자각이 자기 존재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아물지 않는 생의 상처를 자주 어루만진다.
"어느 생이든/내 마음은/늘 먼저 베인다//베인 자리/아물면,/내가 다시
벤다"는 치열함이 그의 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삶의 뿌리로부터 "상처의 꽃"을 밀어올리는 힘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고사목"의 이미지에 함축돼 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