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남 국세청장의 2일 기자회견 내용은 외견상 "사회지도층"의 변칙적인
상속.증여 차단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도 주 타깃은 재벌이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재벌개혁의 신3원칙중 하나
이기도 하다.

때문에 재계는 마침내 국세청이 재벌개혁의 최전선에 투입된 것으로 받아
들이며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미 부의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즉
세법개정을 완비해 놓고 있다.

작년부터 "제한적 포괄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증여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할
수 있게 됐다.

또 올해 세법 개정 안에서는 상속세 과세시효를 연장했고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도 강화했다.

부의 세습을 억제하기 위한 그물망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재벌의 상속.증여에 대해 세정의 칼날을 바짝 들이대는 것은
상속.증여세 강화야말로 재벌문제의 궁극적 해법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학계 등에서는 그동안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상속세만 제대로 물리면 저절로 해결될 일"이라고 지적해 왔다.

3대만 거쳐도 재벌문제는 사라진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정부가 재벌개혁을 선언할 때부터 이미
어느정도 예고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재계가 이날 안 청장의 기자회견 내용에 긴장하는 것은 바로 전날
검찰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혐의를 발표한 데 이어 나왔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가 가능한 공권력을 모두 동원해 재벌 압박에 나선 형국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고강도 압박이 재벌개혁에 대한 반론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 출자총액제한 등과 관련해 재계의 입장을
반영시키려 했으나 이젠 그럴 만한 힘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현대나 삼성의 행위에 불법이 드러나게
되면 재계의 목소리는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죄수의 딜레마"를 재벌개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죄수의 딜레마란 두명이상의 공범자에게 각각 감형을 조건으로 자백의
기회를 줄 경우 공범들이 서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에 결국
둘다 자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역설적으로 재벌에 적용,재벌들이 반발할 여지를 차단한다는게 재벌판
"죄수의 딜레마" 설이다.

즉, 재벌들에게 개혁에 저항할 경우 세무조사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면 어느 재벌도 앞장서 반발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그동안 재벌들을 길들이기 위해 세무조사 등 공권력을
동원한 사례가 있어 이같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