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오락 프로그램 "기분좋은 밤"에 "결혼할까요"라는 코너가 있다.

결혼을 희망하는 총각들에게 짝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MBC의 "신장개업"이 매출이 부진한 상점을 골라 일신시켜주는 것이라면
"결혼할까요"는 결혼 시도에 번번히 실패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지난 20일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최모씨가 출연했다.

다소 키가 작고 수줍음을 타는 30세의 남성이었다.

그에겐 "외모가 촌스럽다"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인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다"라는 등의 비하섞인 진단이 사정없이 내려졌다.

이윽고 그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이어졌다.

파란 가발을 씌워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명동 한복판을 행진시키는가
하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안아달라는 부탁까지 하도록 했다.

자신감을 키운다는 미명아래 강행된 것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때빼고 광내는" 작업도 이뤄졌다.

마사지를 받고 걸음걸이를 교정받았다.

옷은 새 스타일로 바꾸고 머리도 무스로 바짝 올려 세웠다.

이렇게 "변신"한 최씨는 제작진이 골라준 파트너 여성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냈다.

남은 것은 상대방이 그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일.

밤은 점점 어두워졌고 파트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몇십분이 지나고 있다"는 진행자의 중계가 계속됐다.

파트너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그런 출연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프로그램은 끌났다.

이성 파트너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과연 제작진들이 출연자들의 절실함이나 실패때 겪을 난처함을 얼마나
고려하면서 제작에 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힘든 "쇼"를 연출한 후 구애에 실패한 출연자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가
났을까.

그날 "기분좋은 밤"을 본후 기분이 좋았을 시청자는 몇 사람이나 될까.

쓴웃음이 아닌 기분좋은 한바탕 큰웃음을 자아낼 오락프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