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근래 들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진부하던 전개방식이 개선됐는가 하면 특수효과의 어색함도 거의 사라졌다.

국면전환이 빨라진 것도 반가운 현상이다.

불필요한 사설로 따분함을 안겨주던 과잉친절이 짜증스럽던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다.

적어도 최근에 개봉된 "유령"과 "인정사정 볼것 없다"에선 그 점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할리우드 기법을 많이 흉내내긴 했지만 그것이 주는 감흥의 질은 종전과
다르다.

"유령"과 "인정사정..."은 둘 다 활극성이 강한 남성영화다.

여성출연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야한 장면이 있을 수 없다.

무대도 육지와 바다로 판이하게 갈라진다.

"유령"은 바다속 잠수함에서 일어난 군인 반란사건이고 "인정사정..."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벌어진 민간 범죄사건이다.

해군의 두 장교와 형사 범인등 두 커플이 각각 선악의 대결을 벌이는
내용에서도 두 영화는 일맥상통한다.

8월의 서울극장가는 4인의 국산영웅(?)이 둘씩 짝을 지어 혈투를 벌이는
대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유령"의 진영을 가보자.

뜻밖에도 대결장은 바다밑 수백미터-.

한국영화에 핵 잠수함이 등장한다는 것부터가 눈길을 끌기에 족하다.

이런 유의 군사물은 서양의 거대 영화자본과 첨단 촬영기술만 감당할 수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상식을 비웃듯 잠수함의 수중전 모습이 자뭇 긴박하다.

실제의 핵잠수함이 나오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해군장교간의 이념대결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활극에 도전한 제작진의 용기가
돋보인다.

두 주인공의 모습이 군인정신의 귀감처럼 느끼도록 설득력을 보인 점에서
이 영화는 내용상으로도 성공한 작품으로 보인다.

어렵사리 마련한 핵잠수함을 강대국의 압력때문에 폐기처분해야 하는 조국의
나약함에 항거하여 선상반란을 일으킨 해군장교에게 차마 돌을 던질수 없게
만들었다.

"인정사정..."은 "유령"처럼 무게를 잡지 않는다.

박중훈 특유의 "투 캅스"식 연기가 주류를 이룬다.

꾸부정한 자세의 불량스런 걸음은 그런대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마구 쏟아
내는 쌍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걸핏하면 피의자에게 주먹을 퍼붓는 장면도 강력계 형사의 체면을 깎을
소지가 다분하다.

코믹 범죄물에 수사관의 가혹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에 비해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안성기)는 필요이상으로 미화돼 있다.

서부의 냉혈한같은 과묵한 인상은 아무래도 무지막지한 형사보다 매력이
앞선다.

추격이나 격투등 핵심활극이 모두 악천후속에 벌어져 그야말로 범죄와의
전쟁을 "우천불구"로 벌이는 형국이다.

남성적 기개가 넘치는 대표적 직업은 일반적으로 군인과 경찰이 꼽힌다.

두 직업은 다른 직종에 비해 목숨이 더 많이 담보돼 있는 공통적 특징을
갖는다.

"유령"의 두 주인공은 목숨을 잃고 "인정사정..."의 주인공은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군인과 경찰에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명예라는데 죽음으로 명예를
지키려는 두 이야기가 복더위에도 꾸준히 손님을 끌고 있다는 소식은 분명히
유쾌한 일이다.

< jsrim@ 편집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