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싱글이 뭐가 힘들다고 저 야단들일까? 이렇게 스코어가 팍팍 줄어드는데"

첫 필드행이후 출전할수록 샷도 좋아지고 스코어도 줄어들자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약간만 다듬으면 다음해 봄쯤엔 웬만한 사람 저리가라할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었다.

그때 그 라운드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도 자신감에 충만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랐다.

드라이버는 잘 맞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세컨드샷이 토핑되더니 서드샷은 뒤땅이 되고 퍼팅은 터무니없이 모자라거나
지나쳤다.

예상치 못한 총체적 난국.

후퇴란 없을것 같은 내 상승곡선이 그날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특별히 연습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고 그날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난 전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늘집에서 축 처져 있던 내게 선배들이 말했다.

"골프는 고무줄! 늘어난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줄어들고, 줄어들었다 싶으면
다시 늘어나면서, 그것이 차츰 쌓여 진정한 실력이 되는 것. 따라서 오늘같은
추락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뿐이니 달갑게 생각하라"

그래.

앞으로 밀어낸 화살보다 뒤로 더 깊게 잡아당긴 화살이 더 멀리 나가는 것
아닌가.

오늘의 후퇴를 기쁘게 받아들이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날 플레이였다.

난 라운드 내내 시무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안돼 보였는지 골프가 마지막 홀에서 날 위로했다.

3백60야드가 넘는 18번홀에서 보기를 잡게 해준후 골프가 속삭였다.

"어때 18번홀 좋았지. 다음번엔 모두 18번홀 같이 해줄게. 체념할 생각일랑
말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