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3시 한빛은행 17층 회의실.

유한조 한빛은행 이사를 비롯해 외환 산업은행 서울보증보험 대한투자신탁
등 삼성자동차의 5개 채권기관 담당자가 모였다.

회의실은 비장감마저 돌았다.

국내 굴지의 그룹인 삼성그룹에 대한 금융제재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때문이다.

채권단은 이 자리에서 삼성그룹에 대한 단계적인 금융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주식 4백만주의 가치가 2조8천억원
보다 부족할 경우 추가 출연을 약속해 달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삼성측이
거부한 데 따른 조치다.

물론 금융제재조치는 다음주 열릴 채권단 전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여기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채권금융기관이 이처럼 강경한 자세로 나온 것은 드문 일이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상징성 차원"으로 여기고 있다.

일단 제재결의를 해서 삼성측을 압박하면서 곁눈으로는 정부에 "측면 지원"
을 계속 요청하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그동안 채권단은 삼성측에 끌려다니기만 했다.

삼성자동차가 빅딜을 포기하고 법정관리신청으로 돌아선 지 한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담보로 내놓은 주식평가문제나 채권기관간 분배문제도 서로 티격태격
해왔을 뿐이다.

이날 회의도 "기업구조조정작업의 핵심중 하나인 삼성차 문제가 지지부진
하다"는 안팎의 질타를 못이겨 열린 듯한 모습이 다분하다.

그러나 비장한 결의만큼이나 금융제재 조치가 효과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금융계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이다.

한 채권금융기관 관계자는 금융제재조치를 "단식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일이 본업인데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은 밥을 굶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애기다.

그는 "단식투쟁은 일순간일 수밖에 없다"며 "3조여원이 넘는 여유돈을
가지고 있는 삼성그룹에 대한 금융제재조치가 실효성이 있겠느냐"고 불안한
심정을 내비쳤다.

채권단의 금융제재조치는 재벌구조조정과정에서 두번째다.

지난해에는 LG그룹에 신규여신을 중단하는 조치로 반도체빅딜을 타결시켰다.

그룹이미지 실추와 대정부관계 악화를 꺼린 LG측의 양보도 빅딜 타결에
한몫했었다.

삼성채권단의 이날 결정이 삼성자동차 부채문제를 깔끔히 해결할 수 있는
"묘약"이 될 지 주목된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