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 회장 사건은 국내 채권시장의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또 투자자들의 돈을 제대로 운용해 수익을 내 줘야 할 펀드매니저들이
사익을 챙기고자 한 것도 개인의 도덕성 문제 이전에 채권시장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채권시장의 불합리성이 펀드매니저를 비리로 내몰고 있다는 분석이다.

<> 무엇이 문제인가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의 구조적 문제중 첫번째로
시장의 불투명성을 꼽는다.

증권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국내 채권거래의 95%는 장외에서 이뤄지며 특히
회사채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장외에서 매매된다.

지난 2.4분기 장내거래가 급증한 것은 프라이머리딜러제 시행을 앞두고
벌어진 예외현상이다.

장외매매란 다수의 채권매수자와 채권매도자가 경쟁해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1대 1 거래를 하는 것을 말한다.

투명한 시장이 아니다 보니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검은 돈"을 매개로
불공정 매매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김형진 세종증권 회장의 경우도 장외시장의 이러한
허점을 파고 든 사례"라고 설명했다.

장내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90년초부터 증권거래소 장내시장 활성화를 부르짖었지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국고채가 올3월부터 증권거래소 시장에서 매매된게 처음이었다.

한 증권사 채권부장은 "그나마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세계은행)의
권고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채권의 경우 주식과 달라 종목수가 1만2천종을 넘어 거래를 표준화
하고 단순화하기가 쉽지 않다.

대기업의 경우 지난해 평균 한달에 두번꼴로 회사채를 내놓았다.

종목코드를 관리하고 전산처리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사설 브로커 난립도 채권시장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번에 검찰에 적발된 홍승캐피탈 세종기술투자뿐 아니라 파이낸스사나
사설투자회사도 사채시장과 연계해 채권을 중개한다.

이들은 금융업법에 의해 인가된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제한도 별도로
없다.

사업목적만 추가하면 채권중개든 어음할인이든 할수 있다.

금융당국이 규정과 감독의 어려움을 들어 이들 회사를 방치하고 있어 제2의
김형진 사건이 불거질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채권시장의 규모와 수급구조 =채권시장은 주식시장과 함께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룬다.

현재 채권발행잔액은 3백40조원에 이르며 거래량은 지난 7월말까지 5백조원
에 달한다.

하지만 수급은 만성적 불균형 현상을 보여 왔다.

채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기업은 많은데 사겠다는 투자기관이 적은 것이다.

투자기관은 이러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발행기업에 낮은 가격(높은 금리)
과 리베이트를 요구해온게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회사채 최대 매입기관인 투신사들은 발행기업에 "물주"로 군림해 왔으며
특히 한국투신 대한투신 현대투신(구 국민투신) 등 빅3의 영향력은 절대적
이라 할수 있다.

지난해 회사채 발행규모가 40조원 수준인데 비해 3투신의 채권편입규모는
60조원에 이르렀다.

투신사의 펀드운용 불투명성도 채권비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투신사들은 고객돈으로 만든 펀드의 운용내역 공개를 기피해 왔다.

펀드매니저 한명이 마음만 먹으면 정크본드 수준의 부실채권을 편입해도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 채권시장에 미칠 파장과 대책 =시장참여자들은 김 회장의 회사채 할인
비리는 이미 한달전쯤 시장에 알려져 충분히 반영된 만큼 금리상승의 요인
으로 추가 작용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김 회장에 대한 수사가 착수된뒤 한동안 채권거래가 뜸하고 수익률
이 오르는 현상을 보였으나 대우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유동성을 대거 공급,
이런 현상은 거의 진정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그러나 공사채형 수익증권 환매사태를 더욱 부추길 공산이 큰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채권딜러들이 자신의 사익을 챙길 목적으로 고객돈을 갖고 부실채권을 산
것이 드러난 만큼 개인들의 불신감이 더욱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대우사태로 가뜩이나 공사채형에 대한 불신감이 커진 상황에서 김형진
사건이 터져 공사채형환매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투신사 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와관련, 상장회사협의회는 채권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장내거래의 육성과
사전수요예측제도(Book Building)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금융감독원에 건의
했다.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기관의 횡포를 막자는 취지다.

또 지난 6,7월 두달동안 중단됐던 국채발행도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박준동 기자 jdpow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