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투자등급외 채권)의 황제"로 불리며 80년대를 풍미했던 마이클
밀켄은 89년 98개항목의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중 6개 죄목에서 유죄가 인정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복역뒤 감형으로 출감한 그는 전립선암으로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기도
했으나 교육사업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증권업계가 아닌 교육사업쪽에 눈을 돌린 것은 "금융계 영구추방"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엄격한 미국금융계의 규범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장사이자 신뢰의 세계라고 하는 금융에서 선진국이 얼마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지를 밀켄의 예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채권 중간수집상으로 출발해 40세에 중견 증권회사를 인수한 김형진
세종증권 회장이 5일 구속된 사건은 선진금융으로 가는 길이 아직 멀고
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자본을 확충하고 부실채권을 정리했지만 정말 중요한
금융인의 자질과 도덕성,신뢰의 문제에선 나아진 게 없다는 얘기다.

금융계에선 외환위기 이후 출세한 사람들 얘기가 오르내린다.

그들은 모두 30~40대의 영파워에 증권시장을 발판으로 벼락부자가 됐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이 아니면 금융기관 인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60~70년대 공장을 짓고 무역을 해 덩치를 키운 대기업과
80년대 부동산매매 등으로 급성장한 신흥 기업에 이어 금융기관 인수합병
(M&A)으로 일약 금융재벌 반열에 올랐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이 합법과 불법의 중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소송에 시달리거나 몸조심을 하고 있는 처지다.

그들중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자신들에 대한 시샘과 견제가 너무 심하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물밖으로 몸을 내던지는 물고기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국내시장과 감독의 후진성에도 문제는 있다.

이번에 문제된 채권시장만 하더라도 시장 자체가 발달되지 못해 장외에서
대부분의 거래가 이뤄져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밀켄과 같은 본보기를 만들지 못한 온정주의적 감독은 구조조정과
함께 돋아나는 새살을 갉아먹는 암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 허귀식 경제부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