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렸다.
국내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
86년초부터 89년말까지 4년동안은 우리경제는 사상초유의 호황을 구가했다.
낮은 원자재가격,낮은 국제금리, 낮은 달러가치(엔고) 등 이른바 3저현상
이 겹쳤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당 2백38엔에 달했던 엔화가치가 85년9월 플라자합의를 기점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우리경제는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다.
당시 엔화가치는 1백21.1엔(88년11월25일)까지 치솟았다.
엔화가치로만 비교할 경우 국내 수출상품 가격이 일본제품에 비해 2배
가까이나 싸진 것이다.
이같은 엔화가치 급등으로 이기간동안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5%에 달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경상수지는 86년 46억달러의 사상 첫 흑자를 기록했고
88년에는 1백45억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냈다.
엔고영향으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 자동차등 우리나라의 주력상품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데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엔화가치가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경제성장률이 차츰 둔화됐고
다시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말았다.
93년부터 95년말까지 지속된 "수퍼 엔고"때도 우리경제는 톡톡히 혜택을
누렸다.
95년4월19일 엔화가치가 달러당 79.75엔까지 치솟자 수출이 다시 활기를
띄면서 경제를 견인했다.
이 기간동안 경제성장률은 7.8%로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엔고효과가 가시화된 94년초에는 경제성장률이 9% 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과는 달리 이 시기에는 엔고의 호기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세계경제가 전반적인 침체에 빠져든데다 국내적으로도 저효율.고비용
문제가 겹쳤기 때문이다.
80년대중반 엔고로 타격을 입었던 일본기업들이 서둘러 해외생산을 늘린
것도 국내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 상승효과를 반감시켰다.
일본기업의 해외생산은 3차엔고가 시작되던 85년 4.3%에서 94년에는 7.4%로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이런 이유때문에 93년엔 9억9천만달러의 경상흑자를 냈으나 94년과 95년
에는 각각 38억달러와 85억달러의 경상적자를 기록했다.
< 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