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체 MD(Merchandiser, 상품 기획자)들은 "패션상품은 생선과 같다"는
말을 소중한 격언으로 여긴다.

옷도 생선이나 야채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떨어지고 결국은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될 뿐 이라는 것이다.

현우물산의 양기준 사장은 "IMF 경제위기 이전 의류업체들의 고민은
매출신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썩는 물건을 어떤 방법으로 최소화할 것인가가
최고 관심사"라고 실토했다.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기획도 중요하지만 시기를 놓치지
않는 스피디한 경영이 더 우선이라는 셈이다.

실제로 97년이후 상당수 의류업체들은 분사나 브랜드 매각과 같은 방식을
통해 몸사이즈를 작게 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신원의 베스띠벨리, 나산의 조이너스, LG패션의 티피코시 등 연간매출이
1천억원을 넘었던 빅 브랜드들이 지금은 2백~3백억원으로 덩치를 줄인 사실이
그 좋은 예다.

LG패션은 자사가 수입 판매하던 브랜드 스테파넬을 사실상 이탈리아 본사에
양도했고 에스에스패션은 카운트다운을 현우물산에 넘겨줬다.

보성은 분사를 통해 효율을 올리고 있는 대표적 업체다.

진브랜드 닉스와 스톰 등은 (주)닉스로, 패션전문점인 유스데스크는
보성어패럴로 각각 분사시켜 독립 회사를 만들었다.

보성은 이밖에도 주얼리, 클레터 등 7개의 계열사와 13개의 벤처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수로만 따지면 30개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한 거대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의류업계에서는 아무도 보성을 대기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브랜드와 회사 모두 서로의 정체를 잘 모르거나 라이벌 회사로 생각할
만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운사이징으로 조직을 축소하고 세분화한 패션업체들은 매장에 활력을
주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오브제를 만드는 (주)오브제와 타임, 마인의 (주)한섬 등은 이런 의미에서
자주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전문가들은 오브제에 젊은 멋장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독특한
스타일과 매장의 신선도 유지를 꼽는다.

오브제의 매장을 잘 살펴보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는 수시로 상품이 조금씩 바뀌거나 디스플레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단위로 체크해 볼때 차이는 더 확연해진다.

지금 매장에 걸린 드레스가 디자인된 시기는 불과 일주일 전.

디자이너의 머리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회의를 거쳐 채택되고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7일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브제는 봄, 여름에는 가을, 겨울 옷을 만들고 또 추울때는 여름 옷을
만들던 의류업계의 관례를 뒤흔들어 버렸다.

이전에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던 스피드 상품 비율을 최근 40%까지
확대했으며 점점 더 비중을 높이고 있다.

< 설현정 기자 so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