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는 음식을 담는 그릇의 하나로 보통 합이라 부른다.

흔히 놋쇠로 만들었으나 궁중에서는 은으로 된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국수장국 떡국 밥 약식 찜 등 따끈하게 먹는 음식을 주로 담았다.

조선중엽에는 양반가를 비롯해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실생활 용구로 널리
쓰였다.

신라시대 유물인 이 청동유명호우(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광복 후 한국학자
에 의해 발굴된 최초의 고분인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됐다.

그릇이 깊고 바닥에 아주 얕은 굽이 둘러져 있는 점이 독특하다.

몸과 뚜껑에 있는 둥근모양의 가로줄 띠와 연꽃에 싸여있는 오똑한 꼭지
등이 장중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듬직한 형태가 무게 있어 보여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모양이 깊숙한 이런 형식의 그릇은 경주 미추왕릉 지구를 포함, 보문동
지구와 창녕지방의 출토품 중에도 있어 그릇의 분포를 짐작케 한다.

그 중에는 꼭지가 연꽃 봉우리 형식인 것도 있고 새 모양의 꼭지를 가진
것도 있다.

그릇 밑바닥에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란 글이 새겨져 있어
이 호우가 광개토왕을 기리기 위해 고구려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그릇이 신라 고분에서 발견돼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몸지름 24cm.

< 강동균 기자 kd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