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아예 달러로 바꾸자.

일부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세기적 모험이다.

아르헨티나정부는 이를 미 연방준비이사회(FRB), 그리고 재무부와 이미
협의하고 있으며 멕시코도 이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이 두 나라만큼 강도 높은 것은 아니지만 캐나다 또한 아예 미국달러를
자국통화로 채택하는 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세계각국이 달러화를 자국통화로 채택할 경우 이른바 달러권역시장이
안정되어 미국산 상품의 대외교역이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유럽제국이 올해초부터 유로(Euro)라는 새로운 통화체제를 구축한 이후
세계각국 특히 라틴제국의 미국달러화(dollarization) 논쟁은 더욱 힘을
받고있는 분위기다.

이들 국가가 국민적 자존심까지 포기한 채 달러를 자국통화로 채택하겠다
고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지 않은 경제적 이득이 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국가경제의 틀이 통화 경제적으로 미국에 흡인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지표들이 미국화되는 결과가 빚어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이 즐기고 있는 저금리와 저인플레이션을 일거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뿐 아니라 외환거래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적지 않다.

아시아 러시아 그리고 브라질이 겪어야 했던 금융외환위기에서 면역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세가지 이득만큼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이유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살인적으로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브라질위기를 담넘어 구경해야
하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대가가 득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데 이들의 고민이 있다.

자국경제가 미국 경제의 경기순환과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부침을 보이는
경우에도, 일단 미국이라는 큰배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이상, 스스로의
자구책을 독자적으로 취할 수 없게 된다는 치명적 단점이 따른다.

통화정책을 스스로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위기를 맞더라도 미국이 달러자금을 지원해주지 않는 한
스스로의 돈(자국화)을 풀어 구멍난 은행을 메워줄 길을 스스로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로버트 루빈에 이어 7월 정식으로 재무장관직을 이어받을 로렌스 서머스
장관지명자는 최근 의회청문회에 나와, 이들 국가가 달러를 자국통화로
채택하느냐 여부는 스스로의 결정일 뿐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저런
주문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 국가가 미국의 허락을 얻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파나마를 포함한 몇몇 국가는 이미 자국통화를 포기하고 미국달러를
공식적인 국내통화로 지정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허락이라는 절차가 전혀 필요 없었다는 뜻이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라틴국가인 볼리비아, 미국식민지였던 필리핀, 그리고
미국의 적대국이었던 러시아까지도 주요 거래교환수단이 다름 아닌 달러라는
점은 세계각국경제의 달러화 추세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는 미국이 발행한 달러의 3분의2가 미국 밖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과도
맥을 같이한다.

같은 청문회에 나온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 또한 달러를 자국통화로 채택,
득을 보려면 이에 걸맞는 금융여건조성과 경제정책기조유지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통화뿐 아니라 경제정책도 미국화되지 않고는 달러화의 득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통화를 달러화로 바꾼다고 미국이 위기의 최후보루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또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그린스펀의 경고는 통화바꾸기
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은 미국일 뿐 달러를 자국통화로 채택하는 국가에 대해 그 어떤 혜택도
제공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이 세상에는 정말 공짜가 없는 모양이다.

< 워싱턴특파원 양봉진 http://bjGloba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