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열광할 만한 것도 없고 미래에 확실성도 없으면 사람은 거의 모두
과거의 환상에 젖는다.

과거에서 현재의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어서도 아니고 되돌아갈 수 있어서도
아니다.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상하기
어려울 때 과거에서 예견력을 얻기 위해서다.

그 실효성은 사물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성이 있을 때만 보장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과거 집착에 대한 오류를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성(Inertia) 탓이다.

그러나 관성적 인식과 판단 그리고 행동이 급변하는 현실에 적합성을 지니지
못하면 큰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 우리는 관성의 적합성을 검증하고 뒤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관성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면 지체없이 바꾸고 조정해서 적합성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혹시 관성에 따른 행동에 잘못이 없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외환위기는 자유화와 세계화 시대의 시장경제질서에 우리 경제가 적응할 수
있는 경쟁력 배양실패의 산물이다.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개발시대의 정부주도 관리 시장제도와 질서에 잘
길들여져서 정책.경영 그리고 경제 행위가 반시장적이었기 때문이다.

원론적이지만 시장질서의 핵심은 자본(기업인)이 원하는 만큼의 이윤을
올리고 이윤차와 위험도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시장질서하의 자본논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논거 외에 경제주체가
정책방향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리적 활동에 장애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정보가 불확실하거나 왜곡되면 경제주체는 잘못된 신호 때문에
의도하지 않아도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여기에다 군집행동까지 겹치면 불합리와 비효율은 크게 증폭될 수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시장에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투명하고 일관되게
보내야 한다.

특히 동일한 시장정보를 여러 정부기관이 다르게 제공하게 되면 정보출처에
따른 진위에 혼선을 야기하게 된다.

때문에 정보출처의 혼선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쉽게 잊어버린다.

최근의 예는 통화신용정책 특히 금리정책에 대한 여러 부처의 언급 때문에
혼선을 야기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아직은 우리금융시장이 투자 기법의 혁신적 발전 지체 때문에 투자위험을
크게 낮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적 금융상품거래가 대종이고 파생상품거래는
비중이 높지 않다.

그 때문인지 정보의 투명성과 일관성 그리고 정책주체의 혼선에도 불구하고
시장동요가 치명적이지는 않다.

역설적으로 정보의 왜곡과 다원성에 적응성이 높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의 금융시장 경쟁력 확보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정보 주체 다원성 오류를 인식하지 못하는 관성적 행동의 폐해를 인식하고
고치는 것이 매우 절박한 과제다.

그래서 필자는 현실의 오류를 옛날에 비추어 되새기고 싶다.

조선조 실학자들이 이런 인식과 행동철학을 철저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은
가히 감탄하고 남을 만하다.

반계 유형원선생의 수록이 가르쳐 주는 것은 오늘날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반계수록"(한장경 역주, 충남대학교 간)은 총 26권과 보유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전제, 2부 교선제(교육.고시제) 등 6부와 보유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늘날의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소박하나마 정곡을 찌르는 부문은
전제후록과 전제후록 교설의 전화편이다.

이중 관계되는 한 구절만 옮긴다.

"대저 돈이라는 것은 본시 (중략) 윗사람이 인도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
그 흐르는 길을 (정부가) 명백히 인도하지 않으면 어찌 능히 스스로 작용을
할 것인가. (부천화본이 (...) 상지소도이유행지자야 불도기류언능자행도지)"

시대는 달라도 사물운동양식과 인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어찌 오늘 우리가 이를 외면 하겠는가.

비록 바쁜 분들이 읽기에는 번역서조차도 거북스럽겠지만 선각자의
뒤를 추적해 보는 즐거움도 크지 않을까.

전철환 < 한은총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