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여신심사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면 시행되고 있는 부분보증제가
겉돌고 있다.

은행이 여전히 신용대출에 따른 위험부담을 꺼리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소재 중소기업인 A사.

이 회사는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아 시중은행에서 5억원을 운영
자금으로 빌렸다.

만기가 다 되는 시점에 이 회사는 부분보증제 시행 소식을 들었다.

4월부터 신용보증기금이 대출금의 80%에 대해 보증을 서주고 은행이 나머지
를 자체 신용으로 빌려 주는 제도가 시행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출금의 1백%에 대해 보증을 받아야 했던 A사 입장에선 희소식이다.

지난해 이 회사는 보증수수료로 대출금의 1.2%인 6백만원을 신보에 냈다.

80%에 대해서만 보증을 받으면 보증수수료로 4백80만원을 내면 되기 때문에
1백20만원가량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A사는 부분보증제를 이용해 만기를 연장하려다가 거래은행에서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은행이 1백% 보증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전자부품업체인 B사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B사는 은행의 요구로 20%의 신용대출에 대해 꺽기를 당하고 돈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중소기업청 신용지원과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부분보증을 서는 것을 기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출받기 더 어려워졌다는 항의가 하루에도 서너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분보증제가 겉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은행들이 신용대출 금액
에 대한 변상책임을 일선창구 직원에게 지우고 있는 탓이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금리는 전액보증을 섰을 때와 같이 적용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일선취급담당자가 변상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의 전반적인 여신심사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가 은행 창구직원
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변질된 셈이다.

전인천 신용보증기금 보증부 과장은 "은행의 일선창구에서 거부하기 때문에
거래은행을 바꾸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보증서만 믿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자 시행한 제도가
금융기관의 또다른 도덕적 해이로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은행의 기피로 부분보증제 실적은 형편없다.

올해들어 신용보증기금이 중소기업에 보증을 선 금액은 모두
7조1천5백20억원.

이중 부분보증을 선 금액은 8.1%인 5천7백93억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올해 부분보증을 이용해 9조원가량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와관련, 중소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다음주에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착수하겠다"며 "부분보증제를 기피하고 꺽기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은행들
에게 시정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용어설명 ]

<> 부분보증제

그동안 담보가 없거나 금융기관의 까다로운 대출조건을 맞추지 못한 기업은
신용보증기관으로부터 전액 보증을 받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다.

부분보증제는 이같은 제도를 응용해 신용보증기관이 대출금의 일정부분만
보증하고 나머지는 금융기관이 신용으로 빌려주는 제도다.

금융기관은 자체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하기 때문에 여신심사 기능을 강화
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선 보증수수료가 줄고 보증기관도 전액보증을 설 때보다 지원
자금에 여유가 생겨 더 많은 중소기업에 보증을 서 줄 수 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의에 따라 올해 보증기관의 지원금액중
30% 이상을 부분보증제를 통해 지원키로 했다.

이에따라 신용보증기관과 금융기관은 부분보증제 실시를 위한 협약을 맺고
전면 시행중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