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파에는 기업의 기를 앗아가는 그 무엇이 있는가.

다음달 7일, 정리계획승인여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한국 최고의 백화점
미도파.

자신은 물론, 인연을 맺었던 기업들까지 줄줄이 법정관리나 화의, 청산으로
몰아넣어 미도파에 욕심을 내면 "탈"이 난다는 징크스가 생겨났다.

지난 96년말부터 97년 1.4분기에 걸쳐 일어났던 "미도파 M&A(기업인수합병)
전쟁"에 휩쓸렸던 10여개 기업이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

부도로 쓰러져 법정관리를 받고 있거나 청산위기에 몰린 상장사만도 미도파
대농 신동방 고려산업 대한종합금융 등 5개사에 달한다.

비상장회사와 관련거래회사, 소액주주들을 합할 경우 피해는 더욱 늘어난다.

피말리는 방어전을 펼쳤던 대농그룹은 사실상 해체됐다.

M&A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전비가 너무 컸던 탓이다.

미도파는 지난 97년5월 부도방지협약 대상에 들어간 뒤 1년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 7일 메트로미도파와 제기점을 처분하고 상계점만 살린다는 내용을
담은 정리계획안을 냈지만 승인받지 못했다.

오는 5월7일 승인받으면 "거듭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청산절차를 밟아야 한다.

대농과 대농중공업은 법정관리에, 메트로프로덕트와 춘천미도파는 화의에
들어갔다.

M&A 공격을 주도했던 신동방은 4월9일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우익을 맡았던 고려산업도 4월7일 워크아웃대상기업에 들어갔다.

좌익으로 M&A 창구였던 동방페레그린증권은 성원그룹에 넘어갔다가 최근
인가취소됐다.

동방페레그린의 해외 대주주였던 홍콩페레그린도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M&A 과정에서 처음에는 신동방에 우호적이었다가 미도파에 보유지분을
넘겼던 성원그룹도 휘청거리기는 마찬가지.

대한종합금융은 두번째로 영업정지를 당해 인가취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성원건설은 한때 1차부도를 낸뒤 다음날에 소급해서 결제했다.

미도파의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뒤 홍콩계 은행인
HSBC에 팔려 나가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도파 M&A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96년7월.

외국인들은 이달에만 66만5천주를 사들였다.

이후 8월에 78만8천주, 9월에 53만주를 더 사들여 외국인한도(20%)가
소진됐다.

이에따라 1만원을 밑돌던 미도파주가는 한때 4만7천5백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M&A가 실패로 돌아간 뒤 폭락세로 돌아서 원래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현재는 1천5백원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미도파의 M&A가 관련기업을 죽음으로 이끈 "블랙홀"이 된 것은 치밀한
계산이 없었다는 내부적인 원인과 IMF 위기라는 외부적 요인이 가세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전쟁을 일으킨 쪽이나 방어에 나선 쪽은 물론 원군세력도 모두 M&A의
정확한 이해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감정적 대응을 함으로써 상처뿐인 싸움이
되고 말았다.

대농측은 미도파의 정확한 가치를 계산하지 않고 1천3백억원가량의 단기
차입금으로 높은 가격에 미도파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
됐다.

신동방은 미도파 주가가 너무 과도하게 상승했음에도 "못먹어도 고"를
외쳤다.

M&A 실패후 미도파 주가가 폭락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성원측은 미도파 주식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3백억원가량의 차익을 얻었으나
대한종금이 미도파에 1천억원을 빌려줘 부실채권을 키웠다.

서울은행은 미도파 대농 등의 부도를 막기 위해 긴급자금을 지원하면서
부실채권규모를 불렸다.

전쟁을 치르면서 체력이 극도로 약해진 상태에서 IMF 회오리가 몰아닥쳐
승리자는 물론 패배자도 함께 공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 것이다.

< 홍찬선 기자 hc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