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유준(42)씨의 그림에는 신화와 자연의 세계가 함께 녹아 있다.

화폭 곳곳에 어린날 동네 어귀에서 볼 수 있었던 나무 솟대가 등장한다.

산이나 해 목탑 같은 풍경을 배면에 깔고 그 앞에 가늘고 긴 솟대를 그려
넣는 방식이다.

신화속에 나오는 세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를 연상시키게도 한다.

이같은 형상은 흙속에 반쯤 묻혀있는 사금파리처럼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풍만한 산등성이에서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이 둥두렷하게 느껴져 온다.

수많은 전설이 숨쉬는 당산나무나 솔바람을 스치며 지나가는 구름, 새들의
몸짓에서도 따스함이 묻어난다.

거의 모든 작품에 밤하늘의 별자리와 해 달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쪽빛으로 채색된 산이나 땅의 이미지에도 천상의 성좌가 놓여있다.

시공을 초월한 우주의 섭리를 담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이를 "구원의 부작"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16~26일 서울 청담동 청화랑(543-1663)에서 열한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시간, 기억" 연작 35점을 선보인다.

95년부터 97년 사이에 그린 작품들이다.

이번 작업에서도 그는 섬세하고 깊이있는 화풍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씨는 84년 첫 개인전에 이어 90년대 한 해도
걸르지 않고 전시회를 가졌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