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
저자 : 한국사학자 18명 공저
출판사 : 푸른역사
가격 : 9,500원 ]

-----------------------------------------------------------------------

한국사학자 18명이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푸른역사)을 펴냈다.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해방 전후까지의 변혁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들을 집중분석한 것이다.

그들의 고민과 선택을 짚어보면서 세기말 혼돈에 휩싸인 우리의 정체성과
전환기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거울"로 삼을 만하다.

요즘처럼 개혁방안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선조들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되새겨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고뇌하던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시대 지식인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31명은 시대순으로 나열돼 있지만 크게 보면 4가지 부문
으로 나눠진다.

개혁의 갈림길에서 사회정의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인물과 통일을 향해
매진했던 영웅들, 국가존망을 걸고 결단을 내려야 했던 숨가쁜 순간의
주인공들, 지식인의 역할과 시대적 소명을 위해 고민했던 선각자들로 대별
된다.

이 가운데 개혁론과 관련된 인물은 11명.

우리 역사상 개혁기에는 대개 보수와 진보, 점진적 개혁과 급진적 개혁의
대립 양상이 나타났고 전근대 사회에서의 결말은 항상 보수 쪽의 승리로
귀결됐다.

그러나 승리자도 패배자의 논리를 상당 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급격한 개혁을 주장하다 주저앉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
이다.

고려 중기 "제도가 먼저인가,사람이 먼저인가"를 놓고 첨예하게 맞섰던
묘청과 김부식의 경우를 보자.

묘청은 제도개혁과 비상조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으나 김부식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충실하면서 "제도 이전에 사람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묘청의 난 이후 김부식의 개혁이 성공하는 듯했으나 이것마저 실패하자
고려는 결국 무인정변을 맞고 만다.

조선시대 거시적 개혁을 주창했던 정도전도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좌절은 "시대정신과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돼야 개혁에 성공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도학정치를 펼 제도장치 확립에 초점을 맞췄던 조광조의 노력 또한 물거품
으로 돌아갔다.

개혁이 실패했을 경우 더 큰 불행을 당하는 대상은 언제나 백성이라는 것을
되새겨 주는 사례다.

정조와 김종수의 "두갈래 길"은 어떤가.

정조의 탕평 개혁정치가 문벌이나 시비의 차별성을 한차원 높은 수준에서
일거에 해결하려는 노력이었다면 김종수는 청명당 지도자로서 척신의 요구를
배제하되 세신의 욕구는 대변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시대변화에 맞춰 보수와 실용 진보 노선을 다양하게
껴안으려고 노력한 예라고 분석했다.

다산 정약용의 개혁안은 당시로서 가장 선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인의 공의와 토지 재분배를 양축으로 삼아 낡은 정치와 제도를 뜯어
고치면서 농민의 성장과 사회발전에 초점을 맞춘 현실적 개혁론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노력은 조선사회를 근대사회로 연착륙시키려는 종합 개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됐다.

고려 때의 이승휴와 이제현은 "격변기의 지식인이야말로 당대의 과제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시대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행동할 수 있는 역사의식까지
겸비해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