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말 뉴욕 크리스티경매장에서 깜짝 놀랄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조선백자인 철화용문항아리가 7백65만달러에 팔린 것.

요즘 환율로 따지면 1백억원에 육박한다.

이 가격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세계 도자기경매사상 최고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이 뉴스는 국내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이조백자의 우수성에 다시
한번 경이감을 갖게 했다.

이 백자를 구워냈던 곳은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만 만들었던 마을로 이조백자의 본고장
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백자와는 달리 이 마을은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

지난 70년대초 팔당댐이 들어서면서 마을 일부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남종면에서 유일한 교육기관인 분원초등학교는 당시 학생수가 6백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81명뿐.

1백명이하의 학교는 없앤다는 교육부방침으로 폐교위기에 놓여있다.

마을도 과거의 전통은 뒤로한채 단순한 유원지로 전락해 갔다.

보다 못한 주민들과 외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교동문들이 마을살리기에
나섰다.

도자기촌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폐교위기를 맞는 초등학교에 학생을
유치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우선 분원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대학졸업때까지 등록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위해 주민들과 동문들은 "백자장학회"를 만들었다.

수몰피해보상금 일부와 주민 동문들의 출연으로 만든 장학금이다.

기금은 이미 3억원을 넘는다.

내년까지 목표는 5억원.

동문회장과 장학회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김영덕씨(사업)는 "78년 전통의
모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힘을
모았다"며 "지난 2월 졸업식때 8명만 졸업하는 것을 보고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울었다"고 말한다.

장학회에선 장학금말고도 지난해 7천만원을 학교에 지원, 컴퓨터와 각종
실험자재를 도입토록 하는등 학교시설을 국내 최고수준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지역특성을 살린 도예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우리 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백자를 만들수 있도록 하겠다"(정호직 분원초등학교장)는 계획도 갖고
있다.

도자기촌의 명성을 되찾는 작업도 구체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상수도보호구역과 문화재보호지역으로 묶여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이 마을을 살리는 길은 "전통의 계승"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때마침 2001년에 열리는 세계도자기축제를 마을발전의 발판으로 삼기로
했다.

이를위해 최근 마을단위의 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마을 중심부에 도자기전시관을 세우고 이조백자제조과정도 재현할 계획이다.

이같은 노력때문인지 마을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고 있다.

주민들도 더이상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을 발전을 위해 매일 모임을 갖고 토론을 벌인다.

최근엔 주민대표들이 고려청자의 본고장인 전남 강진을 방문해 이른바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분원리 이장 유중길씨는 "이조백자의 전통을 복원하면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학교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더욱 맑고 커질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이곳에 빌라를 지어 분양중인 혜성주택 이용헌사장은 "30~32평형 빌라
3개동 27가구를 분양중인데 이미 19가구가 분양됐다"며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유망지역에서 싼값에 내집을 마련하고 교육비까지 해결할수 있어서
인지 인기가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분원리마을의 전통찾기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의 경제적 번영을
약속하는 작업인 셈이다.

< 육동인 기자 dongi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