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 장영신 회장은 요즘 안팎으로 바쁘다.

30년 가까이 이끌어온 애경산업과 계열사들이 작년한햇동안 좋은
경영성과를 거두며 IMF경제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외부 환경은 아직 마음놓을 단계가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작년말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선임된데 이어
지난달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사상 최초의 여성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여성경제인들의 대표주자로 산업발전에 이바지해온 장회장의 경영능력과
위상을 재계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장회장은 바쁜 일과에 쫓기는 가운데서도 규제개혁위원회의 위원으로
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분 일초를 금쪽같이 쪼개 쓰는 장회장을 본사 양승득 유통부장이 서울
구로동의 애경산업 접견실에서 만났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수수한 옷차림의 장회장이었지만 여성경제인 지원과
중소기업육성등에 화제가 미치자 정부가 해야할 일, 경영자의 자세에 대해
강하고도 힘찬 어조로 평소신념을 분명하게 털어놨다.

< 만난사람 = 양승득 유통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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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영자로서는 처음으로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습니다.

앞으로 전경련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게 됩니까.

<>장회장 =아직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부회장직을 맡긴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마 여경련(여성경제인연합회)회장 자격으로 부회장에 뽑힌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여성경제인들의 입장을 최대한 대변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중소기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여성경제인 지원도
중소기업 육성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선 여성이 기업을 경영하기가 쉽지 않다는게 일반적 평가
입니다.

<>장회장 =한국여성은 전체적으로 자질과 능력이 뛰어납니다.

비단 여성경제인 뿐이 아니에요.

교육도 남성 못지않게 받고 있지요.

그런데도 사회에 제대로 진출하지 못하거나 진출해도 능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주변 인식과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라도 여성경제인들이 나서야 합니다.

최근 여성경제인지원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법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경제인들도 스스로 권익을 찾고 후배에게 모범이 되고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여성경제인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장회장 =점수랄 것도 없죠.

바닥이나 마찬가지일테니까요. (웃음)

-직장내 남녀차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경에서는 여직원들을 특별히 배려할 것 같은데요.

<>장회장 =우리 회사에서도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근무평가를 하면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높게 나옵니다.

그렇다고 여성만 보호해주는 조치는 취하지 않습니다.

여성을 특별대접하는 것은 차별대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않아요.

여성들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여성이니까 봐줄 것이라고 생각해선 절대 안돼요.

떳떳하게 경쟁해서 이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업무적으로 남녀를 구분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앞으로 여경련에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장회장 =여성경제인지원법 시행(오는 6월1일)을 앞두고 할 일이 많아요.

특히 여성경제인협회를 설립하는 일이 급선무지요.

정관을 만들고 운영세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의 시행령 제정도 도와야 합니다.

협회가 설립되면 협회안에 여성경제인지원센터를 두고 여성경제인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게 됩니다.

경제정보와 기술정보도 제공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창업교실도 만들어 여성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세무 부기 등 실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협회에서는 여성경제인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가령 중소기업지원자금을 여성경제인들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할 생각입니다.

-협회가 창립되면 여경련은 해체됩니까.

<>장회장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성경제인협회는 여경련을 모태로 태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여경련은 발전적으로 해산될 것입니다.

여성경제인협회는 92만4천여명에 달하는 여성경제인을 대변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의 여성경제인단체로 태어나게 됩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장회장 =우리나라의 1인당GNP(국민총생산)는 1만달러대에서 7천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려면 수만달러를 달성해야 해요.

남자들만의 힘으론 힘든 일이지요.

남녀가 함께 벌면 더 쉽지 않겠어요.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집에 두고는 선진국 되기 어려습니다.

여성이 여러 분야에서, 특히 경제분야에서 적극 활동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어요.

며칠전 여경련 경남지회 행사에 다녀왔는데 IMF위기후 4,50명의 회원중
한 사람도 부도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회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들이 한결같이 성실하게 기업을 경영한 덕이라고
확신합니다.

-여성경제인들의 저력을 말해주는 사례도 많이 경험하셨을텐데요.

<>장회장 =며칠전 여경련 경남지회 행사에 다녀왔는데 IMF 위기후
40~50명의 회원중 한 사람도 부도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회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들이 한결같이 성실하게 기업을 경영한 덕이라고 확신
합니다.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장회장 =뒤집어 생각하면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시 점검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바꿔야
합니다.

회사의 조직과 제조공정 생산설비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해야 합니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경쟁력을 키우고 경영을 합리화하면서 생산성을
높여야만 세계 초일류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어요.

-IMF 경제위기로 지난해에는 대다수 기업이 쓰러지거나 외형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애경은 성장을 지속했습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장회장 =우리 국민은 어려울 때 단결력을 발휘합니다.

애경에서도 그랬습니다.

경제위기가 닥치자 근로자들이 보너스를 반납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목표를 초과달성했고 회사는 보너스를 도로 내놓았습니다.

기업 규모가 작아서 바람을 덜 탄 점도 있지요.

남들이 대대적으로 사업을 벌일 때 그렇게 하지않고 화학등 자신있는
분야에 집중투자를 했기에 그 덕을 봤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애경의 기업풍토가 한가지 힘이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장회장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사명 "애경"을 여러가지로 풀이합니다.

"애인경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말 그대로 사랑하고 존경하자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인간이 되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자유로운 편이에요.

상사가 권위로 억누르지도 않고 높은 사람 앞이라서 주눅이 들어 말을
못하는 일은 없어요.

(애경은 토요일을 자유복장의 날로 정해 임직원들이 편안한 옷을 입도록
하고 있다.

장회장뿐 아니라 대담직전 잠시 모습을 보였던 안용찬 애경산업사장도
남방에 면바지 차림의 수수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경영일선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장회장 =나라경제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힘들어집니다.

70년대초 석유파동 때는 원료난으로 아주 고생했어요.

그때는 원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지요.

이번 IMF경제위기는 자금난이 큰 고통이었습니다만 다행히 두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애경은 2005년까지 매출 6조원을 달성하고 30대 그룹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회장 =규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려울 땐 참고 반성하고 구조조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때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외형보다 내실을 다져야 하지요.

사업을 다각화하기보다 세계적 전문기업으로 키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애경을 어느 분야에서든 첫째로 꼽힐 수 있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경영인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장회장 =(단호한 어조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해 봐도 소용 없고...

그동안 고생도 했지만 보람도 느껴요.

70년대초(장회장은 애경산업 사장이었던 남편 고 채몽인씨가 지난70년
갑작스레 타계하자 72년부터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에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집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주부로 남아있겠지요.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는 자제(애경산업 안용찬 사장은 장회장의 사위이며
애경백화점의 채형석사장이 장남이다)들과 후배경영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장회장 =경영자는 기업과 종업원을 살찌우기 위해 존재하는 거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경영자가 제 자신만 생각하고 혼자만 잘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기업이라는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많이 열리고 종업원들이 수확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더 누릴수 있도록 경영자는 자신을 거름으로 희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경영자가 기업과 종업원 위에 군림하지 않고 거름이 되겠다는 각오로
일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 말하자면 ''거름론'' 이군요.

<>장회장 =네 그렇습니다.

경영자가 기업과 종업원 위에 군림하지 않고 거름이 되겠다는 각오로
일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바쁜 일과를 보내시는데 건강유지를 위해 하시는 특별한 운동이라도
있습니까.

<>장회장 =주위에서는 운동을 하라고 권하지만 워낙 바빠 시간을 잘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걸 보면선천적으로 강한 체질을 타고난
것 같아요.

매년 한차례 건강진단을 받는데 의사들은 한결같이 운동을 하라고
말합니다.

-손주들은 자주 보십니까.

<>장회장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틈을 많이 내려고 하지요.

올 설날에는 아들, 딸, 며느리등 가족들이 모두 세배를 왔는데 손주들이
부쩍 자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다 내가 늙어간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 정리=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