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씨 '현대산업개발' 경영] 정세영 회장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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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나는 처음부터 오너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으며 큰 형님(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덕분에 가장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또 "이제는 젊고 패기있는 사람들이 사업(자동차)을 맡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을 맡으라고 제의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70이 넘어서면서 이제는 은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 왔다.
사업은 젊은 사람들의 패기와 용기로 발전할 수 있다.
명예회장님께 그런 의사를 비쳤더니 "아쉽지만 유능하고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해 주셨다"
-현대산업개발은 직접 경영할 생각인가.
"자동차에서 오랜동안 명예회장으로 뒤에서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 왔다.
현대산업개발에서도 똑같이 자문역을 맡게 될 것이다"
-산업개발을 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지난 57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노가다(건설현장)일은 태국에 가서 해봤고 주로 사업계획을 많이 해왔다.
그래서 마치 친정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자동차처럼 또다시 멋진 회사로 만들고 싶다"
-인력 이동이 많이 있는가.
"최대한 사람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나 산업개발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으며 두 회사 모두 좋은
진용을 갖추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대주주로 있는 고려산업개발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어떻게
처리 되나.
"몽땅 깨끗하게 정리하겠다(지분을 정리해 현대에 되돌려 주겠다)"
-현대자동차 정기주총에서 특정인사의 이사 선임을 막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신문에 많이 보도됐던데 왜 그런 애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견이 있었던 건 아니다"
-32년간 자동차 인생을 마감하고 건설맨으로 거듭 나는 소감을 말해달라.
"솔직히 말해서 현대자동차는 자리를 잘 잡았다.
다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못 드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치 신문에 이견이나 알력이 많은 것처럼 났는데 사실은 큰 형님 덕분에
가장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오너라는 생각이 없었다.
저를 봐서 제 아들을 배려해 산업개발을 맡겨주신 큰 형님께 고맙게
생각한다"
< 윤성민 기자 smy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6일자 ).
없으며 큰 형님(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덕분에 가장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또 "이제는 젊고 패기있는 사람들이 사업(자동차)을 맡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을 맡으라고 제의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70이 넘어서면서 이제는 은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 왔다.
사업은 젊은 사람들의 패기와 용기로 발전할 수 있다.
명예회장님께 그런 의사를 비쳤더니 "아쉽지만 유능하고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해 주셨다"
-현대산업개발은 직접 경영할 생각인가.
"자동차에서 오랜동안 명예회장으로 뒤에서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 왔다.
현대산업개발에서도 똑같이 자문역을 맡게 될 것이다"
-산업개발을 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지난 57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노가다(건설현장)일은 태국에 가서 해봤고 주로 사업계획을 많이 해왔다.
그래서 마치 친정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자동차처럼 또다시 멋진 회사로 만들고 싶다"
-인력 이동이 많이 있는가.
"최대한 사람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나 산업개발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으며 두 회사 모두 좋은
진용을 갖추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대주주로 있는 고려산업개발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어떻게
처리 되나.
"몽땅 깨끗하게 정리하겠다(지분을 정리해 현대에 되돌려 주겠다)"
-현대자동차 정기주총에서 특정인사의 이사 선임을 막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신문에 많이 보도됐던데 왜 그런 애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견이 있었던 건 아니다"
-32년간 자동차 인생을 마감하고 건설맨으로 거듭 나는 소감을 말해달라.
"솔직히 말해서 현대자동차는 자리를 잘 잡았다.
다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못 드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치 신문에 이견이나 알력이 많은 것처럼 났는데 사실은 큰 형님 덕분에
가장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오너라는 생각이 없었다.
저를 봐서 제 아들을 배려해 산업개발을 맡겨주신 큰 형님께 고맙게
생각한다"
< 윤성민 기자 smy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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