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은 서울시 반포동의 옛 조달청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두 기관이 같은 방을 나눠 쓰는 경우도 있다.

간담회나 세미나는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한다.

직원들도 정서적으로는 한 가족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조직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획위는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예산청은 재정경제부의 산하기관이다.

올해 예산안은 세 기관의 합작품이다.

기획위가 작성한 예산편성지침을 토대로 예산청이 실제 예산안을 짰다.

재경부장관이 이를 국무회의와 국회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니라 한 살림을 세 가족이 하는 꼴이다.

기획위와 재경부 어느 쪽도 실제 예산편성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차관급 기관인 예산청이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거나 다름없다.

국무회의에는 거의 매번 예비비 지출안건이 상정된다.

국가정보원의 지출에서부터 사소한 행사비용도 포함된다.

그러나 예비비를 관리하는 예산청장은 국무회의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대신 재경부장관이 예산청이 작성해준 예비비 지출내역을 그대로 읽을
뿐이다.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기획위원장에게도 보고되지 않는다.

국무위원들이 토론해서 의결하도록 돼있는 중요한 안건을 차관급인
예산청장에 맡기는 조직체계상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국가의 핵심 기능중 하나인 예산을 차관급에 맡겨놓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예산을 담당하는 관리예산처(OMB)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장관은 대통령의 심복이 임명되며 개각시에는 국무장관과 같은 요직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실제 예산을 편성하는 사람과 예산을 받아 쓰는 부처의 업무는 배로 늘었다.

예산청은 기획위와 재경부,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정책기획수석실에 각각
보고해야 한다.

부처의 경우에는 예산청과 기획위와 이중으로 협의해야 한다.

업무가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예산청의 총괄국과 기획위 사무처의 재정기획국, 기획위 정부개혁실의
재정개혁단의 업무가 접근 방법만 다를뿐 사실상 비슷하다.

이들 기관간의 크고 작은 신경전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순 차관회의에는 재경부가 제출한 성업공사법 개정안이
안건으로 올랐다.

안병우 예산청장은 금융구조조정에 막대한 자금을 대고 있는 예산당국도
자금회수를 위해 성업공사 운영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재경부 등 돈을 쓰는 기관들만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기획위와 예산청은 예금보험공사 운영위원회에서도 배제됐던 만큼 꼭 참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안건을 제기한 재경부 차관은 "재경부와 예산청은 같은 식구이니
알아서 합의하겠다"고 제안, 조건부로 안건이 통과됐다.

그러나 재경부는 예산청이 재경부 산하기관인 점을 들어 예산청의 요구를
거부했다.

기획위와 예산청은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보류시킬 것을 요청하는등 강력히
반발했으나 이미 버스가 지나간 뒤였다.

예산청의 한 관계자는 "어느 한 쪽에 늦게 보고하면 우리는 바지저고린줄
아느냐"는 호통이 날아온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예산기능은 대개 부처와의 정책을 조정하는 역할과 함께 붙어
있다.

미국의 OMB는 예산및 행정관리, 분야별 정책조정을 담당한다.

우리로 치면 기획예산위에다 예산청, 재경부의 경제정책국, 행정자치부의
행정관리업무를 합친 형태다.

영국과 일본의 경우 재무성이나 대장성에서 금융 세제 예산을 함께 통할
하면서 경제정책을 조정한다.

재경부에서 예산을 담당하는 형태로 보면 된다.

예산을 통해 각 부처의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권위주의적
발상"(김광웅 서울대 교수)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지난 1년간의 경험으로
볼때 경제정책과 예산의 분리는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 김성택 기자 idnt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