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겠어요. 어떤 희생이 따를지 따져보지 않겠어요.
..."

대전 이종기 변호사 사건에 연루돼 19일 법복을 벗은 양삼승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25년간의 판사생활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A4용지 한쪽의 편지에
남긴 독일 나치시대 저항시인 베르톨트 브레이트의 시귀절이다.

부친 양회경 전대법관(98년 작고)의 뒤를 이어 "2대 대법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양 비서실장은 합리적이고 소박한 성품으로 선후배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

특히 "판사에게는 칼도, 지갑도 없다. 공정한 판단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그는 법관과 사법부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던 인물로
꼽힌다.

그는 "사법부가 한참 어려운 시기에 저만이 부담을 벗어던지는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이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경기고 서울법대, 사시 14회인 그는 96년 대전고법 부장으로 승진한 뒤
지난해 3월 대법원장 비서실장에 발탁된 촉망받는 법관이었다.

92년 서울형사지법 부장시절 무죄선고를 받았어도 석방에 일정 제한을
두었던 당시 형사소송법 관련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93년 현대상선 비자금유용사건 재판에서 경제논리를 주장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준엄히 꾸짖은 일화가 유명하다.

독일유학후 언론관계법을 연구해 적쟎은 논문도 펴내기도 했고 94년에는
국제상사재판부의 초대 재판장을 맡는 등 법원 전문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