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정인(63)씨와 최용운(45)씨가 소설집을 잇따라 선보였다.

지난해 제1회 김동리문학상을 받은 서씨는 5년만에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작가정신)을 펴냈다.

최씨는 등단 11년만에 첫 단편집 "바빌론에 가까이"(문이당)를 묶어냈다.

두 사람 모두 탄탄한 문학적 성과를 거두면서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작가이다.

이들의 소설집에는 감정적인 흥분이 배제돼 있으면서도 신랄한 독설과
능청스런 해학이 담겨 있다.

요즘처럼 가벼워지기 쉬운 시대에 사유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서씨의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에는 중.단편 5편이 실려있다.

그는 전형적인 소설양식에서 벗어나 새 기법을 추구하는 작가이다.

87년 "달궁"이후 논리적인 플롯과 고정된 성격을 파괴하는 실험에
몰두해왔다.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소설에서 볼 수 없는 구어적 화법을 도입한 것.

"글"보다는 "말"과 "소리"로 독자와의 교감을 이루자는 노력이다.

이번 작품집 역시 그간의 작업과 닮았다.

자전적 소설 "무자년의 가을 사흘"을 빼고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다.

독자들은 읽고 난 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한참동안 곰삭여봐야
한다.

말해진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의 새로움이 그의 묘미다.

에세이적 문투와 4.4조로 흐르는 율문체의 입담이 행간마다 꿈틀거리는
것도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

최씨의 "바빌론에 가까이"에는 9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그는 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한 뒤 장편소설만 6권을 냈다.

이번 소설집에는 등단작 "폐각처분"부터 최근작 "겨울에 나방은 살아
있다"까지 포함돼 있어 10여년간 그가 걸어온 행로를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다.

그는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에 애정을 보인다.

"도시빈민 연구가"는 절망과 고난의 낭떠러지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다뤘다.

"폐각처분"에서는 기업 인수합병이나 퇴출에 따른 직장인의 고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는 노동현장을 자주 다루면서도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흔히 "착한 노동자와 악덕 기업주"로 설정되기 쉬운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벗어나 입체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속의 주인공도 대부분 관찰자로 비켜서 있다.

"신 노인"등 어린 아이의 시점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자주 쓰인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