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새해를 맞았다.

지난해는 돌아보면 경제위기의 공포와 종말론적 비관주의가 지배했던
한해였다.

다행히 신년을 맞는 지구촌 주요도시들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세계 4대 강국의 새해 현지 표정을 특파원들을
통해 훑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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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

혼돈의 워싱턴 정가, 뜨거운 5번가(Fifth Avenue), 스산한 실리콘밸리.

새해를 맞는 미국의 풍경이다.

정치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문제를 둘러싸고 혼돈 속에
빠져있다.

상원이 "탄핵 재판"준비에 착수한 가운데 백악관과 공화.민주 양당
지도자들은 막후에서 정치적 절충 작업으로 부산하다.

정작 클린턴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연안의 섬인 힐튼헤드로 연휴를
떠났다.

이곳에서 열리는 ''르네상스 위켄드'' 세미나에 참석하고 연두교서를 구상
한뒤 돌아올 계획이다.

뉴욕의 맨해튼 5번가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는 뜨거운 소비 붐이 지속
되고 있다.

미국 주요도시에는 ''역러시아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의 경우 저녁 6시를 넘어서면 뉴저지 코네티컷 롱아일랜드 등 인근의
"베드 타운"에서 맨해튼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문다.

고급레스토랑 뮤지컬등 "나이트 라이프(night life)"를 즐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물 부문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실리콘 밸리의 성탄절은 "잿빛(gray) 크리스마스"였다.

많은 기업들이 종업원들에게 선물은 커녕 "해고 통보장"을 보내야 했다.

아시아 경제위기 등으로 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실물 부문에서 잘라내는 인력을 유통 건설등 서비스 부문에서
흡수하는 산업간 인력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 경제의 이같은 "소프트-서비스화"를 두고 "또다른
거품"이라며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가 모두 앞날을 예단하기 힘든 "안개"속에서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 earthlink.net >


< 중국 >

베이징(북경)의 천안문 광장에는 높이 2.5m의 접근 차단용 임시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수십년동안 천안문 광장을 덮어온 시멘트 벽돌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대신 하얀 대리석으로 드넓은 천안문 광장을 단장한다.

공사는 벌써 수개월째 계속돼오고 있다.

연말연시에도 쉬지 않고 공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당국은 오는 10월1일 국경절(건국기념일) 50주년 행사를 1백만명을
수용하는 세계 최대의 이 광장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마카오가 돌아오고(99년 12월) 개혁개방 20주년이 지난 만큼 "중국의
웅비"를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이 당국의 구상이다.

벌써 장쩌민 주석은 정치개혁을 강조하고 있고 신년을 맞은 베이징도
개혁을 앞둔 조용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정치개혁 슬로건의 배후에는 새로운 중국에 대한 원대한 밑그림도
그려지고 있다.

당정의 고위층은 군간부들과 대규모 신년행사를 가질 계획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마카오가 반환된 다음 남는 문제는 대만"이라는 시각에서다.

당국은 올해를 굴절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초석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국영기업 개혁을 점검하고 산업구조도 고도화하겠다는 것이 인민일보등이
전하는 당국의 새해 포부다.

새해 첫날인 오늘도 천안문 광장에는 전국에서 실려온 하얀 대리석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ked@mx.cei.gov.cn >

< 독일 >

독일인들은 올 한해를 자부심으로 맞고 있다.

"유러" 출범일인 오늘(1월1일)부터 유럽연합(EU)의장직을 맡게된 독일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과 함께 유러화 시대를 연다.

통독 8년만에 또다른 통일, 즉 유럽 경제통일의 첫 장을 여는 책임을
맡았다.

말 그대로 독일의 신세기가 열린 셈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는 일이다.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수도 베를린에서 21세기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 집무실을 작년 11월말 베를린으로 옮긴 상태지만 실질적인
천도는 올 중반에 이뤄진다.

의회는 7월7일 이전한다.

총리실 이전은 7,8월중으로 예정돼 있다.

정부 부처도 비슷한 시기에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정부종합청사로
입주한다.

한국 대사관도 올해 중반께 베를린으로 이사한다.

베를린은 지금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전반적 업무가 시작되는 9월 이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구서독의 수도 본은 문화관광 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본은 지난 94년 연방정부와 체결한 수도 이전에 따른 손실보전 협약에
의해 총 34억마르크의 구조조정 비용을 지원받는다.

본은 이 예산의 상당부분을 베토벤 생가 확장, 라인강 유역 관광지 개발,
국제학술대회 유치 등을 위한 관광산업 육성에 투자할 계획이다.

< 파리=강혜구 특파원 hyeku@ coom.com >


< 일본 >

"98년중 가장 좋았던 일을 회고하라면 바로 98년이 끝났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농담을 하면서 새해를 맞고 있다.

일본 열도 전체가 98년을 넘겼다는 것 자체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작년은 2차대전이후 최악의 해였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새해에 거는 기대도 크다.

정부도 분위기 반전에 앞장서고 있다.

오부치 총리는 "3년만의 플러스 경제성장을 달성해 올해는 반드시 불황에서
탈출하겠다"고 새해 덕담을 밝혔다.

경제계도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

올해에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경영 합리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회복단계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활황은 아니다.

겨우 바닥에서 탈출하는 수준에 만족해야하지 않느냐는 분위기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기업들의 경영을 세계표준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며 올해가 일본기업의 세계표준화 원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쪽은 새해 벽두부터 활기를 띠고 있다.

자민 자유당간 연립정권 수립을 위한 개각이 며칠 뒤인 6일이면 단행된다.

연립정부 출범으로 오부치 총리의 입지는 강화될 전망이다.

9월에는 자민당총재 선거가 있다.

오부치 총리는 당초 하시모토 전총재의 잔여임기만 채울 것으로
관측돼왔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말 겨울보너스까지 반납한 오부치에게 올해는 적어도 작년보다는
나은 해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