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 1년동안 생활패턴이 크게 바뀌었다.

문화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급격한 소득감소는 문화예술의 소비와 생산을 극도로 위축시켰다.

공연수는 줄었고 관객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당연히 문화생활의 지형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 대형공연장과 예술장르에는 불가사의하다 싶을 정도로
관객이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대안문화의 부상을 외치는 인디단체들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고 국내에서의
극심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문화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가 활발했다.

IMF체제로 인해 변화된 문화생활 양태를 시리즈로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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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소비행태는 물론 공급구조 역시 양극단으로 갈리고 있다.

공연예술의 소비 및 생산의 모형도가 전형적인 표주박 형태를 띄고 있다.

공연장, 장르, 작품의 질에 따라 흥행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면서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IMF체제에 들어선 이후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대형작품, 대형무대 선호현상이다.

공연의 양이나 내용 모두에서 예년수준에 못미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하거나 입소문이 퍼진 작품에만 관객이 몰리고 있다.

대부분 문화생활비를 크게 줄인 형편이어서 주어진 범위내에서 "작품선택의
실패"를 줄이려는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술의전당이 지난달 5일~29일 오페라극장에서 개최한 "오페라페스티벌"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15회 공연에 몰린 관객은 2만4천명을 넘는다.

객석점유율은 71%.

특히 유료관객의 객석점유율이 56%(총관객중 79%)에 달했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평균 유료객석점유율이 27%에
그쳤던 것에 비해보면 유례없는 성공이다.

올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수는 줄었지만 작품당 관객수는
지난해에 비해 54%가 늘었고 유료관객비중도 1백31%나 증가했다.

"명성황후" 등 큰 뮤지컬도 마찬가지.

뮤지컬 작품당 평균 관객수는 66%, 유료관객수는 67%의 증가세를 보였다.

클래식 연주회도 "7인의 아름다운 사람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피아노
독주회"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등 지명도 있는 연주자의 공연에 관객이
집중됐다.

예술의전당의 문호근 예술감독은 "예전과는 달리 적은 비용으로도 여가를
활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찾는 추세"라며 "특히 대형공연장과 작품에만
관객이 집중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극장 역시 전체관객수와 유료관객비중이 각각 20%정도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립극장도 소속단체 공연의 유료관객비중이 30%~60%선을 유지했다.

대형 뮤지컬 및 오케스트라, 대중가수들의 공연 등 굵직한 대관공연이
잇따랐던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 공연관람객수도 지난해 수준이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나 실버계층을 위한 악극, 마당놀이 등 목표관객층이
확실한 공연의 흥행도 여전하다.

이와는 달리 소극장 위주의 대학로 연극가는 처참한 지경이다.

극단 춘추가 운영하던 미리내소극장은 "벗기기연극"으로 이름을 날린 단체
에게 넘어갔다.

뚜레박소극장처럼 아예 문을 닫고 술집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

연극협회 소속 극단중 3분의1 정도가 올해 단한편의 공연도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연극협회 김혁수 사무국장은 "극단이 발행하는 티켓의 현금매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그나마 관객에게 저렴하게 판매되는 사랑티켓이라도
나가는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랑티켓의 한달 발매물량도 2만장에 불과하다.

대학로 40여개 소극장에 사랑티켓 관객이 골고루 분산되더라도 극장당 하루
16명꼴 밖에 안되는 셈이다.

그나마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의형제" "매직타임" 등 일부
공연에만 관객이 몰리는 추세여서 대다수 소극장의 사정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학전의 이은미씨는 "예전에는 대학가의 시험기간중에도 표가 움직였는데
요즘은 공연문의 전화만 하지 공연장을 찾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소규모 클래식 독주회도 일반관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연강홀의 조경환 극장장은 "클래식 독주회의 경우 표를 사들고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이 집안잔치이거나 연주자의 사기를 위해 초대관객으로 객석을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클래식음악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클래식음악의 경우
연주자의 지명도에 따라 관객편중현상이 심하다"며 "기업으로부터 협찬을
받고 관객도 끌어모을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형편"
이라고 말했다.

CMI 등 일부 클래식음악 공연기획사는 조직을 대폭 줄여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한국무지카, 파코스 등은 아예 사업을 포기했다.

기업협찬이 지난해에 비해 10분의1이하로 감소, 이같은 사정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공연예술매니저협회의 이용관 사무국장은 "공연예술의 소비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이 공연장과 단체를 중심으로 교육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마케팅기법을 정착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