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라는 비상 사태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개정 기업회계기준이 금융감독위원회를 통과한 11일 증권감독원에서 개정
실무를 맡아온 회계관리국소속 젊은 회계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평소였다면 기업과 금융기관및 정부 부처간의 이해가 얽혀 회계기준 개선
작업이 용두사미로 끝났었겠지만 이번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다.

"퇴직급여충당금 규정처럼 국가간 고용구조의 차이로 어쩔 수 없는 항목만
제외됐을뿐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하다는 조항들이 대부분 들어있습니다"
(권태리 증감원 부원장보)

몇몇 조항에서는 국제회계기준을 능가하는 강력한 규정을 넣기도 했다는
지적이다.

증감원은 회계기준개정 영향에 대한 공식 보도자료에서 "기업의 경우
순이익이 감소하고 자기자본이 줄어들며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등 재무구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기업회계기준 개정과 금융업회계처리준칙 제정으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앞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 결산실적이 환율변수에 더 민감해진다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급락)해
생기는 외환손을 바로 당해 결산의 영업실적에 에누리 없이 반영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외환손실이 생기면 이를 수년간에 걸쳐 분할해 결산에
반영시킬 수 있었다.

이런 분식아닌 분식결산은 금년도 결산으로 종지부를 찍고 12월말 결산법인
기준으로 99년 6월말결산(상반기 영업실적결산)부터는 환율변동으로 인한
손실(또는 이익)을 액면 그대로 손익계산서에 넣어야 한다.

상장사의 재무담당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회계장부가 외환시장의 환율움직임
에 따라 춤출 수 밖에 없다는 푸념을 하고 있다.

작년말의 IMF 전후처럼 원화가치가 폭락하면 외환손실로 인해 거의 모든
상장사들이 자본잠식 상태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에대해 정부는 기업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결산에서 이월된
외환손실(12월말결산 상장사 전체로 20조원가량)을 재평가적립금으로 상계
처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 발생하는 외환손은 여지없이 손실로 털어내야 한다.

<> 금융기관의 충당금 부담 커진다 =은행 증권 종금 보험사의 경우 금융업
회계처리준칙 제정으로 지급보증에 대해서도 충당금을 설정토록 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에따라 금융업체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예를들어 증권사의 회사채 지급보증에서 지금까지는 회사채 부도시 손실
(대지급)로 반영했으나 새 제도아래서는 부도여부와 상관없이 아예 충당금을
설정해야 된다.

은행들의 경우 증감원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지급보증액은 50조원정도이며
충당금예상액은 2조원에 육박한다.

자연히 자기자본 감소로 문제의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증권사도 영업용순자본비율의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증시안정기금 출자액의 평가손(올 10월말현재 1조7천억원)도 증권사의
자기자본 감소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 분식회계의 구멍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자산이나 투자유가증권에 대한
평가도 싯가기준으로 탈바꿈해 분식결산의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

부동산 매매 등에서 장부가 원칙을 이용해 고가 계약으로 계열사를 지원
하는 내부거래가 철퇴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또 계열사가 많은 지주회사도 자회사들의 손익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에 합법적인 분식결산 도구로 악용돼온 "회계처리방법 변경"도 엄격
하게 제한된다.

대기업들이 외상매출채권으로 가지고 있는 어음 등을 담보물로 삼아 차입할
경우에는 바로 부채비율이 올라가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회계전문가들도 30대그룹에 적용되는 결합재무제표와 더불어 개정 기업회계
기준이 "분식회계 척결"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영과 소유가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은 한국의 풍토에서 엄격한
제도가 "회계의 투명성"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데엔 의문의 여지가 있다.

<> 외부감사 강화조치 뒤따른다 =정부는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 기업오너
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강력한 외부감사권 강화제도를 강구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관행이 바뀌도록 부실회계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을 기정사실화
해놓았다.

과연 새 회계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12월말결산 상장사들의 99년 상반기
결산보고서(99년8월15일 공시)가 "투명체"로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 회계처리기준 주요변경내용 >>

<>외화손익

.현행기준 : 여러해에 걸쳐 분할반영
.새기준 : 당기결산에 전액 반영
.기업에 주는 영향 : 환율요인으로 당기순손실(이익) 변동커짐

<>금융기관 지급보증

.현행기준 : 충당금 설정의무 없음
.새기준 : 충당금 설정
.기업에 주는 영향 : 은행 증권 종금 보험사의 자기자본 감소요인

<>증시안정기금출자

.현행기준 : 평가손 미반영
.새기준 : 전액반영
.기업에 주는 영향 : 증권사 자기자본 감소우려

<>자산평가

.현행기준 : 장부가 반영
.새기준 : 싯가로 평가해 반영
.기업에 주는 영향 : 부동산 매매 등을 통한 계열사간 지원 봉쇄

<>파생상품

.현행기준 : 주석으로 내역기재
.새기준 : 결산에 직접 반영
.기업에 주는 영향 : 이익(손실) 변동폭 커짐

<>투자유가증권

.현행기준 : 장부가 기준 가능
.새기준 : 투자대상기업손익 적극반영
.기업에 주는 영향 : 계열사 많은 지주회사 손익 변화 커짐

<>회계처리방법

.현행기준 : 방법변경 용이
.새기준 : 엄격히 제한
.기업에 주는 영향 : 임의적인 손익조절 봉쇄

<>매출채권감소

.현행기준 : 자산감소로 처리
.새기준 : 부채증가로 부분 반영
.기업에 주는 영향 : 부채비율 상승

< 양홍모 기자 y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