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써 법정에 가다보면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있지만 때로는 안타까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일전에 어느 법원에 갔는데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할머니 한분이 재판에
나오셨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까 그동안 열심히 남의 집 살이를 하면서 돈을 모았는데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그 돈을 빌려주었다가 받지 못해서 재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 선 상대방은 할머니가 세상물정도 잘 모르니까 자기는 돈을 빌려간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고 그러자 재판장은 할머니가 돈을 빌려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이나 증거를 내야만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고
누차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내 돈을 빌려갔다는 것은 하늘이 다 알고
있다면서 재판장에게 판사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판단해 주어야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냐면서 그만 법정에 주저 앉아서는 내돈을 돌려 줄 때까지
법정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법원의 입장에서는 이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할머니의 이야기만을 듣고 할머니에게 승소판결을 내려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재판을 하게 되면 법원에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기 위해서는 재판을 하는 당사자
들이 관련된 자료나 증거를 모두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법원도 누구의 말이 정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이야기가 맞다고 인정해 줄 수가 없습니다.

또 원래 재판이라는 것은 재판을 청구한 쪽에서 자기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재판을 신청한 사람이 자기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재판에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은 흔히 재판을 신청해 놓고는 그 후
부터는 법원에서 알아서 다 해주겠지하고 가만히 있다가 재판에 지고나면
담당판사가 나쁜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판사가 상대방과 친해서 재판에
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됩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또 자기가 잘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제3자의 입장에
있는 법원이 증거없이 그 사람의 말만은 믿어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재판을 하게 된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자기의 주장을 법원에 잘
납득시킬 수 있는지 또 자기의 주장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무엇이 있는지를
잘 검토하고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들어야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변호사. 한얼종합법률사무소 hanollaw@unitel.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