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세월 애태우며 살아오셨을/
남녘의 내 어머니처럼/
포연이 하늘을 뒤덮던 그밤/
나룻가의 버드나무 밑에서/
북으로 떠나는 내 어깨우에/
작은 보따리 메어주며/
손저어 바래주던 어머니/ (중략) /
운명하면서도 눈감지 못했다는/
어머니 그 령혼이/버드나무 너인듯싶구나"
북한 시인 신지락이 95년 발표한 "어머니의 모습"중 일부다.
나룻가의 버드나무를 바라보면서 남녘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애절하게 담겨있다.
이산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열망은 분단문학의 가장 내밀한 소통로이자
남북정서의 접점이기도 하다.
시인 오탁번(55.고려대교수)씨가 창간한 시전문 계간지 "시안" 첫호
(98가을호)에 90년대 북한의 현대시 15편이 소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 조선작가동맹의 기관지 "조선문학"에 실린 작품중 남북한의 동질성을
형상화한 것들을 모았다.
사상교육에 치우쳤던 과거의 성향과 달리 분단극복과 민족적 연대의식을
다룬 것이 많고 서정시의 폭도 크게 넓어졌다.
"지맥으론 하나로 잇닿아 있는 땅/
삶의 핏줄 하나로 잇대이지 못한탓에/
강화도여 너는/
민족의 한가슴에/
아픈 옹이로 박히는구나"(주광남, "강화도를 바라보며"부분)
이념의 굴레를 벗고 자연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온 들판의 푸르른 봄/
시작되는 곳에서/
풍년꿈 아지치는 푸른 모판에 앉아/
나는 이야기했네/
처녀와 풍년봄과-"(김광춘,"봄과 처녀"부분)
"오는 봄이 더딘듯/
눈덮인 절벽가에 활짝 피어/
백두의 노을빛을 잎잎에 머금은/
아름다운 진달래를 보아라"(윤병규,"백두산의 진달래"부분)
"입술을 감빨며 모금모금/
어머니 젖을 파는 아기인양/
단가슴 식히며 한방울도 놓칠세라/
대지는 달게 들이마셔라 봄하늘 약비"(박경심, "푸른 봄비"부분)
한편 오씨는 이들 북한 시인에게 1편당 30달러(약 4만원)의 원고료를
지급할 예정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