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입찰추진사무국이 기아 및 아시아자동차 국제입찰의 유찰을 선언한
것은 무엇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막판까지 낙찰을 밀어부쳤으나 기아 입찰 추진사무국은 이대로
입찰을 진행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유찰로 결론이 나왔다.

<> 왜 유찰됐나 =유찰의 표면적인 이유는 31일 삼성자동차가 부채탕감 등
부대조건을 철회하지 않은데 따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기아 입찰추진사무국은 이미 지난 28일 저녁 유찰로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국 정태승 전무는 "사무국은 이미 각 업체들이 부대조건을 달아
실격처리했다"고 밝혔다.

류종열 관리인은 28일 오후부터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와 정부 고위관계자들
을 만나 이같은 결정을 설명했으나 강한 반대에 부딪쳐 31일 오전까지 막판
설득작업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 왜 막판 혼선 빚어졌는가 =부대조건을 달면 실격처리해야 하는지 불이익
을 줘야 하는 것인지가 혼선을 빚게한 주요인이었다.

이근영 산은 총재는 "조건을 달면 심각한 불이익(Serious Disadvantage)를
주겠다고 했지 실격시킨다(Disqualify)고 하진 않았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입찰사무국은 "조건을 달면 반드시 탈락한다는 점을 응찰업체들에
입찰설명회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밝혔다.

확정된 부채와 낙찰자 실사치가 10%이상 차이가 나면 부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부채탕감 조건은 실격이라는 설명
이다.

또 하나의 혼선은 삼성이 응찰서류에 달아놓은 부대조건에 대한 해석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시간이 걸린 것은 삼성이 입찰서류에 부대조건
을 달면서 모호한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 대우 포드는 입찰서류 본문에 조건을 달았지만 삼성은 부속
서류에 이 조건을 끼워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 입찰 과정에서의 실수 =최대 "악수"는 입찰 진행 과정에서 응찰업체에
조건을 바꿀 것인지를 되물었다는 것 자체다.

산은 관계자가 밝히듯 유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지만 모든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됐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입찰이 끝나도 결코 공개돼서는 안되는 응찰 내역이
낱낱히 흘러 나왔다.

가장 중요한 응찰가도 정확하게 공개됐다.

게다가 조건만 철회하면 낙찰 자격이 있는 특정업체에 조건 변경에 대한
답변 시한을 연장해 주는 실수도 저질러졌다.

사무국의 기준에 따라 모든 업체들이 탈락 위기에 몰리자 유찰을 우려한
채권단이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각 업체들에 조건 변경의사가 없느냐고 묻기 시작한 것.

사무국도 채권단에 떠밀려 각 회사에 공문을 띄웠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문제를 만들었다.

28일 정오로 답변 시간을 못박았는데 삼성과 대우에만 시한을 연장해 줬다는
것.

입찰사무국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벌어지자 28일 유찰을 결정하고 29일
평가단을 해산시켰다.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도 공정성과 투명성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열린 국제입찰
이 이런 시비에 얽혀 유찰됐다는 것.

이미 해외언론들은 한국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찰이 남긴 가장 큰 후유증이 분명하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