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도현(37)씨는 요즘 텃밭 일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전북 정읍 산외면에 작은 농가를 얻어놓고 일주일의 절반은 그곳에서
지낸다.

지난번 비에 얼갈이배추 싹이 다 녹아버렸지만 그는 그 자리에 상추와
열무씨를 또 뿌렸다.

가장자리에 심은 애호박과 가지 토마토 줄기는 벌써 깨금발을 돋우며
잎을 내밀고 있다.

시인의 마음을 닮은 텃밭.

책읽고 글쓰는 일이 전부인 그에게 밭갈고 씨뿌리는 작업은 또다른
"글농사"다.

그는 이곳에서 진실로 소중하고 그리운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더 외로워야겠습니다. 진정한 문학은 정말 외로울 때 나오는 거잖아요"

돌담에 기와지붕을 입힌 농가는 처마끝에 유난히 거미줄을 많이 달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마다 희미하게 "뼈"를 드러낸 서까래 사이로 시인의
마음처럼 별빛이 스며드는 곳.

글이 막힐 때는 문을 열고 나와 멀리 개울물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는 "출판사 일로 한달에 한번 정도 서울 가는 것 말고는 나홀로 시간을
지키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산서고등학교를 끝으로 교사생활을 그만뒀을 때도 그는 "순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서"라고 고백했다.

그에게 외로운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70년대 후반 고교 문단을 휘어잡았던 그는 80년대 질곡의 역사를 거치며
"전교조"활동으로 한 때 교단을 떠나야 했다.

연탄과 라면, 국방색 바지와 구식 자전거가 그의 앨범들을 가득 채우던
시절.

해직교사와 시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곤궁한 밭두렁을 걷던 그는 나팔꽃
같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모천회귀의 "연어"를 떠올렸다.

시적 감수성으로 빚어낸 새로운 산문의 영역이 그 앞에 펼쳐졌다.

시와 소설,동화의 장르를 넘나들며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독특한 글밭을
개간한 것이다.

96년 출간된 "연어"는 지금까지 25만권이나 팔렸다.

두번째 작품 "관계"도 6개월만에 6만권을 넘어섰으며 지난달 선보인
"사진첩" 또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시절은 참 많이도 아팠다.

그러나 신혼 때 "먼 데서 친구가 오면 아이 들쳐 업고 친정 가서 자던"
아내도 이젠 "잠잘 때마다 무릎이 서늘하던" 옛 시절을 따스하게 돌아볼
만큼 여유롭다.

중학교 2학년인 딸 유경이와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 민석이는 아버지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봉우리를 자랑스레 올려다보며 어린 연어의 꿈을 꾼다.

그는 연말까지 시집(문학동네)과 에세이집(샘터사)을 1권씩 묶고, 새로운
형식의 어른용 동화(명진출판)도 탈고할 계획이다.

그에게 거는 한국문단의 기대는 늘 크고 무겁다.

2000년까지 "한 눈 팔지 말라고" 틈새없이 잡혀있는 원고일정이 그를 더욱
"외롭고 높게" 밀어올린다.

< 정읍=고두현 기자 kd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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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61년 경북 예천생.

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대에게 가고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등.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관계'' ''사진첩'' 등.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