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8년 정부 수립 당시 전화 가입자는 3만8천명.

인구 1백명당 0.2대꼴.

50년이 흐른 97년의 전화 가입자는 2천42만2천명으로 1백명당 44.4대가
보급됐다.

5백34배가 늘어 난 셈이다.

지난해 월급생활자의 월평균 소득은 2백28만7천원에 지출은 1백67만7천원.

61만원의 흑자를 내며 알뜰살림살이를 구가했다.

그러나 타임머신을 타고 63년으로 돌아가면 월급생활자의 평균 소득은
5천9백80원으로 낮아진다.

게다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매년 3백40원의 적자를 봤다.

지출이 많았던 것.

지난 34년새 월급쟁이들의 소득은 명목상 3백82배, 지출은 2백65배가
늘었다.

통계청은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통계로 본 대한민국 50년의
경제사회상변화"란 통계집을 12일 발간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반세기가 얼마나 격변의 연속이었고
그 소용돌이속에서 국민들의 삶과 의식은 또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노동.가계.물가=63년 경제활동인구는 8백23만명이었으나 97년엔
2천1백60만명으로 늘었다.

2.6배나 증가한 것.

도시 근로자 가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의 비율을 나타내는 엥겔계수의
경우 63년 61.3에서 97년 28.7로 크게 감소했다.

화폐가치는 65년 1만원이 97년 4백56원으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97년 현재의 소비자 및 생산자 물가가 65년에 비해 각각 21.9배와
13.4배 높아진 것을 반영한 수치이다.

<>국민계정.재정.금융=국민총생산(GNP)은 53년 14억달러에서 97년
4천3백74억달러로 3백12배나 늘었다.

1인당 GNP도 지난 53년 67달러에서 지난해 9천5백11달러로 껑충 뛰었다.

1백42배가 증가한 것.

산업생산구조는 53년 농림.어업이 GNP의 47.3%, 광공업 10.1%,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가 42.6%를 차지하는 1차산업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97년엔 농림어업이 5.7%로 뚝 떨어졌으며 광공업 25.9%, 기타
68.4%로 변화, 3차산업중심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공업=62년 주류 출고량은 47만3천9백kl였으나 96년엔
2백95만2천7백kl로 6.2배 증가했다.

주종별로는 62년 당시엔 탁.약주의 출고량이 전체의 81.6%를 차지,대중주
자리를 지켰으나 96년엔 7.3%로 주저 앉았고 그자리를 맥주(63.3%)가
차지했다.

20세이상 인구 1인당 주류소비량은 62년 37.5l에서 96년 94.7l로
2.5배 증가했다.

20세이상 인구 1인당 연간 담배 소비량은 60년 87갑에서 97년 1백67갑으로
1.9배 늘었다.

<>무역.국제수지=수출액은 48년 2천2백만달러에서 97년
1천3백61억6천4백만달러 6천1백6배나 증가했다.

수입도 2억8백만달러에서 1천4백46억1천6백만달러로 6백95배나 폭증했다.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상대하는 수출국가수는 63년 38개국에서
97년 2백25개국으로, 수입대상국도 39개국에서 2백9개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원화의 가치는 50년 1달러당 2원50전에서 97년 1천4백15원20전으로
무려 1천5백77배나 떨어졌다.

<>사회.교육.문화=55년 당시 25세이상 국민의 91.8%가 초등학교
졸업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었다.

대졸자는 1.3%.그러나 95년 현재 초졸이하는 26.6%로 크게 낮아졌고
대신 대졸이상이 19.7%로 높아졌다.

대졸이상 여성인구도 55년 0.3%에서 95년 13.1%로 증가, 눈길을 끌었다.

60년대와 70년대는 영화의 시대였다.

61년 연간 관객수는 5천8백60만명으로 1인당 연간 관람횟수는 2.3회,
69년에는 관객수가 1억7천만명을 돌파했다.

1인당 연간 관람횟수는 5.5회.

그러나 컬러TV와 VTR의 보급으로 급격한 하향세를 타기 시작, 96년에는
0.9회로 떨어졌다.

<>남북한 비교=정부수립직후인 48년에는 남북한 총인구가 2천9백52만명
이었으나 97년엔 6천9백84만명으로 늘어났다.

남한의 인구는 북한에 비해 48년엔 2.1배, 97년엔 1.9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분단이후인 46년이후 출생자는 남북한 총인구의 84.4%인 5천8백97만명에
달한다.

1인당 GNP는 53년 남한이 67달러로 북한의 58달러보다 약간 많았으나
97년엔 9천5백11달러대 7백41달러로 12.8배나 차이가 났다.

< 대전=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