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들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은행장을 선출할까.

그들도 정부로부터 자격심사를 받고, 툭하면 중도하차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등 선진국들도 우리나라와 똑같은 방법으로 은행장을
뽑는다.

주주 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한뒤 이사회에서 은행장을 호선한다.

정부가 까다로운 은행장 자격기준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닮아 있다.

영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국에서 은행장이 되려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감독당국의 "정합성 검정
(fit and proper test)"을 통과해야 한다.

정직성, 직무수행능력, 판단의 건전성, 근면성, 과거사업 또는 금융활동의
정당성이 규정에 맞아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은행장 추천위원회"라는 이상야릇한 제도는
외국엔 없다.

그런데도 선진국에선 은행장선임을 둘러싼 잡음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정부가 은행장후보를 애매한 이유로 거부했다는 얘기도 없고, 중간에
"물러나지 않으면 잡아넣겠다"고 협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차이는 바로 하나다.

될만한 사람을 은행장으로 선출하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백86년역사를 가진 씨티은행은 전통적으로 최고경영자를 중시해 왔다.

또 특출한 최고경영자에 의해 오늘날 세계적인 은행으로 자리잡은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월터 리스튼(Walter Wriston)과 존리드(John Reed).

리스튼은 국제법과 외교학을 전공한뒤 46년 씨티은행에 입행했다.

국제법전공자답게 국제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 국제부장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67년 은행장으로 취임, 83년 은퇴할때까지 씨티은행을 국제금융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주인공이다.

리스튼의 업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바로 국제업무확대다.

그는 "국가는 파산하지 않는다"는 확신아래 이익이 큰 개발도상국용 대출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국제부문은 그후 10여년간 씨티은행의 달러박스가 됐다.

다른 한가지는 후계자로 존리드회장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년퇴임을 4년 앞둔 80년 3명의 후계자보후보를 부회장으로 선임,
후계작업을 시켰다.

앵거 물러(범무 섭외담당) 존리드(소매금융담당) 토마스 테오볼드(기업금융
담당)가 그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매금융시대임을 확신한 리스턴은 리드를 후계자로
선정하는 "신기"를 발휘했다.

리스턴의 뒤를 이어 지난 84년 회장에 취임한 리드회장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공병대에 들어가 한국에서도 근무했다.

이후 MIT에서 생산관리 분야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말하자면 그는 정통뱅커보다는 엔지니어가 되기위한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이런 특이한 이력이 오히려 씨티은행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리드는 65년 씨티은행에 입행한뒤 전공을 살려 시스템 데이터부문에서
일하게 된다.

능력도 출중해 씨티은행이 ATM(현금자동입출금기)망을 가동시키는 일등공신
이 된다.

아울러 시스템과 소비자금융을 결합시켜 국제금융계에 소비자 금융돌풍을
몰고 왔다.

리드회장의 신념은 세가지라고 한다.

"항상 성장할 것, 항상 변화할 것, 항상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

이런 신념이 씨티은행을 항상 성장하고 변화하게 만드는 동력이라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과거지향적이고 현실안주형인 사람들만 은행장으로 선출하는 국내은행과
질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