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명예퇴직금에 메스를 댄 것은 공공부문에 널리 퍼진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민간에선 법정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쫓기는 사람들이 숱하다.

이런 판국에 공공기관 명퇴자들은 법정퇴직금 외에 많게는 공무원의 4.4배
에 이르는 억대 명퇴금을 챙겨 여론의 비난을 사왔다.

기획예산위원회는 이런 국민정서를 등에 없고 칼을 들었다.

<> 실태 =공공기관들중엔 적자인데도 금융기관에서 돈을 꿔다 거액의
명퇴금을 주는 곳(석탄공사 광업진흥공사)까지 있다.

예산위 조사결과 올 1~7월 명퇴를 실시한 한국통신은 퇴직자수 2천6백61명중
일반퇴직은 6백18명에 불과했다.

명퇴자는 2천43명.

한국은행은 7백2명중 6백47명, 국민은행은 9백68명중 8백13명이 명퇴자였다.

명퇴금을 보면 25년 일하고 정년이 5년 남은 부장기준으로 마사회는
1억8천6백만원을 기록, 공무원(과장급) 4천2백만원의 4.4배에 달했다.

수출입은행의 모간부는 이달초 명퇴금 3억4천2백만원과 법정퇴직금을
포함해 모두 4억8천만원이나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석탄공사 광업진흥공사 무역진흥공사(KOTRA) 등은 본부장 등 집행간부들
에게도 명퇴금을 나눠 줬다.

<> 얼마나 깎이나 =예산위가 마련한 공무원 기준을 적용할 경우 공공기관의
명퇴금은 절반이상 삭감된다.

31년 근무한 국민은행의 부장이 정년을 4년 남기고 명퇴할 경우
1억9천2백만원에서 5천2백만원으로 명퇴금이 1억4천만원 깎였다.

법정퇴직금은 2억6천3백만원.

25년 근속하고 정년잔여기간이 5년인 부장급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한국은행의 경우 1억8천만원에서 6천6백만원으로 63.3% 줄어든다.

그러나 이는 공무원 수준으로 줄어들 뿐이다.

법정퇴직금을 감안하면 임금이 크게 깍인 일반 기업체보다 아직 높다는
지적이다.

<> 노사합의가 걸림돌 =현행 근로기준법 97조1항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땐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도록 돼있다.

즉 공공기관들이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명퇴 개선방안을 시행할 수
없다.

지난 80년대초 신군부가 노조의 동의없이 공기업의 퇴직금을 일방삭감했다가
법정에서 정부측이 패소한 사례가 있다.

집행간부 등에게 명퇴금을 차등지급하는 것도 "한개 사업장에 두개이상
퇴직금제도 불인정" 법조항에 걸린다.

예산위도 "명퇴제도 개선지침이나 협조요청이 법률상 효력이 없다"는
노동연구원의 자문을 듣고 발표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결국 예산위는 불같은 국민정서와 사회분위기를 고려해 발표하기로 결정
했다.

예산위 관계자는 "공기업들이 노사합의를 못해 아예 명퇴를 실시하지
않으면 노조측이 불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화및 구조조정 회오리에 휩싸인 공공기관들이 명퇴제도 노사합의를
둘러싸고 파업 등의 심각한 마찰을 빚을 것으로 전망이다.

< 정구학 기자 cg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2일자 ).